붉어지는 경계선 - 고광식 내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건 기계음이다 친구의 죽음을 훔쳐보러 가는 길 악몽이 쏟아지는 검은 천을 길게 찢으며 간다 별들을 삼키는 터널과 심장 소리 들리는 강을 지나 지붕이 자꾸만 자라는 장례식장으로 간다 내 삶도 누군가 입력해 놓은 세밀한 지도 때문에 산과 강을 건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설정된 길 위에서 자유로운 척 운전대를 잡고 좌회전과 우회전을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자유분방했던 친구의 생애와 붉어지는 가슴속에 딱따구리를 키울 부모를 떠올린다 어쩌면 친구의 삶도 입력된 순서대로 시작과 끝을 맺었는지 모른다 문득 새가 찢어 놓은 붉은 길이 나타나고 내 몸은 현재 모르는 공간 위에 있다 차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발신자의 징검다리를 건너 허공에 빗금을 긋는 강렬한 번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