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선을 긋는다 - 황형철

마루안 2020. 12. 17. 19:31

 

 

선을 긋는다 - 황형철


별 하나가
몇억 광년을 살며
우주를 횡단한다

눈 깜빡하는 순간
지구를 스치고 마는 것이지만

중심을 벗어났을 때만이
가장 아름다운
선을 긋는다

너와의 시간이
천체의 일부였다면
홀연히 사라진
말들 또한 많고 많았으니

지금도 무한한 우주
어딘가 행성처럼 떠돌고 있을
못다 한 말들이여

네 마음에
별똥별 같은 선 하나
긋기는 했는가


*시집/ 사이도 좋게 딱/ 걷는사람

 

 

 

 



종(種)의 기원 - 황형철


혹을 지고
평생을 떠돌아야 하는
유목의 시간은
얼마나 무거운가

모래언덕을 넘는 일이란
소멸의 기점에
가까워지는 것이라 여긴 적 있다

실은 멈춰 있는 것이야말로
진짜 죽음
생사존망은 신의 것으로 두고
더 깊게 들어가야 하는
운명이 있다

지나온 발자국이나
세상의 환란 같은 거
쉽게 모래에 덮이고야 말 것이니
눈물은 금기

건기의 햇볕을
참아낼 당당한 끈기와

선인장의 가시처럼
나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패도 하나쯤 가져야 한다

끝내는 바람의 활달이
혈관을 흐르고
대(代)를 이을 때
세상에 기록되지 않은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사막의 끝도 거기에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비 - 백무산  (0) 2020.12.19
상대성 이론이라는 이름의 기차 - 박인식  (0) 2020.12.17
청어 - 윤의섭  (0) 2020.12.16
우연한 아침 - 백인덕  (0) 2020.12.16
동행 - 박윤우  (0) 2020.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