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추억에 대한 경멸 - 기형도

추억에 대한 경멸 - 기형도 손님이 돌아가자 그는 마침내 혼자가 되었다 어슴푸레한 겨울 저녁, 집 밖을 찬바람이 떠다닌다 유리창의 얼음을 뜯어내다 말고, 사내는 주저앉는다 아아, 오늘은 유쾌한 하루였다, 자신의 나지막한 탄식에 사내는 걷잡을 수 없이 불쾌해진다, 저 성가신 고양이 그는 불을 켜기 위해 방안을 가로질러야 한다 나무토막 같은 팔을 쳐들면서 사내는, 방이 너무 크다 왜냐하면, 하고 중얼거린다, 나에게도 추억거리는 많다 아무도 내가 살아온 내용에 간섭하면 안 된다 몇 장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사내가 한숨을 쉰다 이건 여인숙과 다를 바 없구나, 모자라도 뒤집어 쓸까 어쩌다가 이 , 책임질 밤과 대낮들이 아직 얼마인가 사내는 머리를 끄덕인다, 가스 레인지는 차갑게 식어 있다 그렇다, 이런 밤은 저 게..

한줄 詩 2012.12.30

불온한 윤회 - 박남준

불온한 윤회 - 박남준 유곽을 찾듯 산을 건너왔으나 보이는 저 산으로 가면 모든 길의 지척은 첩첩의 빗장을 걸어 열리지 않는다 생애를 걸어가던 길이 있었어 그 길의 어디쯤 손짓하며 부르던 잘못 들었나 어디서부터 한때 이 산중에도 흥망이 있었지 멀리 불빛을 가둔 산문의 이쪽 허공 중에도 이를 곳이 있었는가 도처에 일어난 횡횡한 비명, 시위 같은 바람이 문 문을 걷어찬다 저 바람을 타고 나도 날아 올랐던가 문 밖에 떨어져내렸던가 문득 흔들고 가는 생각 한편을 뚫고 고요를 가르며 땅~ 벼락처럼 울리며 꽂히는 풍경 소리 어떤 경전도 어떤 법어보다도 나를 관통하는 그 꾸짖음 눈 두는 곳이 절벽이다 생각이 미치는 곳이 절벽이다 그 절벽 앞에서 무릎 꿇어보았는가 절벽의 발걸음 되돌려보았는가 건너오면 캄캄하도록 되짚어..

한줄 詩 201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