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는 저녁 - 정이경 조금씩 지겨워지기 시작한 창문 너머 몇 번의 파랑이 지나갔을까 한 삼십 년이 지나자 언성 높여 싸우지 않아도 왜 각자의 방으로 파고드는지 지붕보다 높이 자란 감나무도 다 알게 되었다 길 건너 빨랫감처럼 후줄근한 재개발 지역 현수막과 함께 철거가 시작되고 떴다방과 부동산중개소가 인근의 학군을 내세워 젊은 여자들을 불러 모았다 삐걱대는 무릎을 지나 허리까지 올라온 소식들로 꽤 여러 날 포개지는 모녀의 뒷모습 주인을 닮은 구부정한 처마 아래 세상의 이야기들이 아슬아슬하게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 중인 졸음이 담긴 고양이 눈동자가 있는 저녁 긴 골목 끝 휘어진 담장이 있는 집 아직도 무화과나무 그대로다 인기척 드문 대문 옆 모란이 피어 그나마 환한, 누군가는 이런 장면을 창문으로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