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어둠에 밑줄 - 전형철

마루안 2020. 12. 26. 19:23

 

 

어둠에 밑줄 - 전형철


어둠의 시선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도려낸 오른쪽 심장
두 손에 쥐고 힘을 주면
수밀도처럼 흐를지 풍선처럼 터질지
오래된 수첩에 번진 밑줄
뜨겁게 달궈진 비를 맞으며
하늘을 부풀리는 바람과
뭍으로 달아나는 해초와
독한 새떼를 견디고 돋는 들풀들
파수 지난 어음을 돌리듯
밤은 불리는 이름이 많고
난간에 묶인 채
먼지의 메아리를 따라
저 바깥의 바다로
등대지기가 떠난
없는 동네의 있는 이름
먼저 내민 손을 거두며
밤마다 긋는 밑줄
내 오른쪽 심장의
해독,
어둠의
해도


*시집/ 이름 이후의 사람/ 파란출판


 




이별은 미분 - 전형철


숫자는 종이 위에서 절룩거린다

리듬을 타고 춤은 오와 열이 무너진다

당신을 만난 것은 죄가 아니나 늘어진 취객의 멱살을 끌어올리듯 서서히 차오르고 있다

기억은 반올림할 수 없고 서둘러 마무리될 수 없다

피동의 숲을 건너 수열의 강을 지나 길고 가는 뱀을 따라가야 한다

마지막 손짓이나 안부를 생략하고 바람과 저녁의 촉감은 지정된 소수점에서 버려야 한다

당신을 만난 적이 없다는 말이 당신은 기록이 없다로 증명될 수 있을 때까지

아름다운 상별은 변수로 수렴될 것이다

제발 당신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소수(素數)처럼


 

 

# 전형철 시인은 1977년 충북 옥천 출생으로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고요가 아니다>, <이름 이후의 사람>이 있다. 조지훈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연성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