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쑥대머리 - 서정춘

마루안 2020. 12. 23. 22:09

 

 

쑥대머리 - 서정춘

 

 

아들아

나 어느 한 때 떠돌이로

삐리광대였느니

어렵사리 길은 멀고

한두 끼니 건넜을 때 울컥

거린 울분을 물키듯 퍼마시며

여기까지 흘러와

저 열두 발 폭포처럼

토악질처럼

북장단도 없이

쑥대머리 불렀느니

 

 

*시집/ 하류/ 도서출판b

 

 

 

 

 

 

파묘 - 서정춘

 

 

아버지 삽 들어갑니다

무구장이 다 된 아버지의 무덤을 열었다

설다선 이빨의 두개골이 드러나고

히힝! 말 울음소리가 이명처럼 귓전을 스쳤다

어느 날도 구례장을 보러 말 구루마를 끌며

하늘만큼 높다는 송치재를 오를 때

마부 아버지와 조랑말이

필사적인 비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시인의 말

 

하류가 좋다

멀리 오고 오래 참고 끝까지 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