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안락의자, 작별 인사 - 박판식

안락의자, 작별 인사 - 박판식 어깨가 잘리는 꿈을 꾸었다, 울어야 하기 때문에 여자는 종교를 믿는다고 했다 반미치광이 여자는 할인점에서 우산을 접었다 펼쳤다 하고 석조 건물이 눈보다도 더 반짝거렸다 벚꽃보다는 사쿠라라고 발음할 때, 그는 지난날들을 더 믿을 수 있었다 아름답고 순진한 소년을 사쿠라라고 하면 안 되나 재봉사인 그는 사랑의 감정이 나일론 실과 같다고 믿었다 파업에 동의한 대가로 그는 직장을 잃었다 목적도 없이 불 꺼진 거리를 왔다 갔다 했다 뒤틀어진 빵처럼 개울은 딱딱했다 비뇨기과 질병과 신경통이 그를 괴롭혔다 교외의 하늘은 날카롭지 않아 좋았다 훤하게 밝아오는 도봉산, 산타 루치아를 부르면서 저 다리를 건너도록 하자 우울증도 때로는 타락이다 개울은 지식의 천사처럼 그에게 새삼 고독을 깨닫..

한줄 詩 2017.05.31

마음은 왼쪽으로 흘러내린다 - 여태천

마음은 왼쪽으로 흘러내린다 - 여태천 바람 때문일까 바람은 불지도 않았는데 모든 게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었다 때가 되면 바람이 불지 않아도 이 방의 공기들은 시간의 무게중심을 따라 한 곳으로 모여든다 해가 지고 방이 붉어지는 일처럼 무거워진 한쪽 어깨를 동쪽으로 조금씩 내리는 어디 먼 남미에서 왔을지 모를 하늘은 푸르고 구름이 하얀 그림 갑자기 마음을 들켜버린 그림의 안쪽이 궁금해지는 것은 바람의 탓이 아니다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 기울어진 그림을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왼쪽으로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침묵으로 애써 버텨보는 그림의 안쪽 허물어지는 건 밖의 문제도 시간 때문도 아니다 안쪽에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시집, 국외자들, 랜덤하우스중앙 국외자(局外者)1 - 여태천 그는 아주 멀리 떠나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줄 詩 2017.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