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밥 - 박소란
살뜰히 지어낸 한 그릇 밥, 여기
투명한 봉분이 있다 쌀통 안 옴질대던 바구미 한마리 제 숨을 부려놓았다
평생을 두고 탐닉한 몇톨의 실박한 세계 그 어느 틈엔가
이렇다 할 묘표도 망석도 없이 조용히 빈 몸을 안장시켰을 것이다
열망의 모양대로 동긋이 굽은 등과 잦은 시련을 걷던 다리 다시금 길을 밝히던 더듬이까지
모두 이 속에 고스란히 흐무려졌을 것이다
한평생 코 박고 몰두하던 곳
그곳에 죽어 묻힌다는 것 영원히 하나의 세계만을 신봉한다는 것 과연
성자의 최후라 읽어 마땅할 잠언의 기록
선연한 계시가 그릇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제상 앞 향탁에 머리를 조아리듯 조심스레 숟가락을 들자 기꺼이 한술 밥으로 퍼올려진 바구미 한마리
향긋한 잠이 주린 입속을 감돈다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창비
배가 고파요 - 박소란
삼양동 시절 내내 삼계탕집 인부로 지낸 어머니
아궁이 불길처럼 뜨겁던 어느 여름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까무룩 꺼져가는 숨을 가누며 남긴
마지막 말
애야 뚝배기가, 뚝배기가 너무 무겁구나
그 후로 종종 아무 삼계탕집에 앉아 끼니를 맞을 때
펄펄한 뚝배기 안을 들여다볼 때면
오 오 어머니
거기서 무얼 하세요 도대체
자그마한 몸에 웬 얄궃은 것들을 그리도 가득 싣고서
눈빛도 표정도 없이 아무런 소식도 없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느른히 익은 살점은 마냥 먹음직스러워
대책 없이 나는 살이 오를 듯한데
어찌 된 일인가요
삼키고 또 삼켜도 질긴 허기는 가시질 않는데
# 박소란 시인은 1981년 서울 출생으로 동국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9년 <문학수첩>으로 등단했다. <심장에 가까운 말>이 첫 시집이다. 2015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뭉쳐지지 않는 구름 - 이승희 (0) | 2017.05.28 |
---|---|
실없는 그 기약에 - 김왕노 (0) | 2017.05.28 |
마음은 왼쪽으로 흘러내린다 - 여태천 (0) | 2017.05.28 |
마음의 북극성 - 박남준 (0) | 2017.05.28 |
바닥이 더 환하다 - 장시우 (0) | 2017.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