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왼쪽으로 흘러내린다 - 여태천
바람 때문일까
바람은 불지도 않았는데 모든 게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었다
때가 되면 바람이 불지 않아도
이 방의 공기들은 시간의 무게중심을 따라
한 곳으로 모여든다
해가 지고 방이 붉어지는 일처럼
무거워진 한쪽 어깨를 동쪽으로 조금씩 내리는
어디 먼 남미에서 왔을지 모를
하늘은 푸르고 구름이 하얀 그림
갑자기 마음을 들켜버린
그림의 안쪽이 궁금해지는 것은
바람의 탓이 아니다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
기울어진 그림을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왼쪽으로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침묵으로 애써 버텨보는
그림의 안쪽
허물어지는 건 밖의 문제도
시간 때문도 아니다
안쪽에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시집, 국외자들, 랜덤하우스중앙
국외자(局外者)1 - 여태천
그는 아주 멀리 떠나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한다
해가 뜨지 않는 곳에서 그는 회벽처럼 말랐고
아무 곳이나 들러 물건을 훔쳤다고 씌어져 있다
가자 가자, 이곳만 아니라면
노래 같은 것 부르지 않고, 마음 같은 것 훔치지 않을 것이다
한적한 주점에서 노래가 흘러나오자
내내 어두웠던 2백 년의 골목이
흔들렸다
이 겨울을 보내면 그래서 또 한 시절을 견디면
오늘처럼 또 해가 뜨지 않아도
차가워진 술은 다 팔릴 것이다
그때서야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편지라도 띄워봐야지
띄엄띄엄 내뱉은 말을 받아 적는다면
두고두고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될지도
노래는 소문처럼 녹이 슬어 들을 수 없었다
붉게 달아오른 해를 보고도
온몸의 뼈가 시렸다
# 여태천 시인은 1971년 경남 하동 출생으로 고려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국외자들>, <스윙>, <저렇게 오렌지는 익어가고>가 있다. 2008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동덕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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