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가장 오래된 유적 - 이철수

가장 오래된 유적 - 이철수 지하도를 건너오다 앉은뱅이 사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초저녁, 짐승의 순한 눈을 닮은 사내 눈빛이 너무 시려 내 몸의 안쪽이 얼얼했다 어떻게 왔을까, 그 사내 끌고 온 따뜻한 길의 안부가 궁금했다 발도 길도 없는 속수무책이 죄인처럼 불려나와 허공에서 석고대죄 하는 입, 저렇듯 징글징글한 마려움의 피돌기가 반 토막의 육체로 물구나무서서 내 무심천을 건너오는데 속도로도, 관념으로도 통과할 수 없는 이 난감한 유적 앞에 서서, 나는 누란의 미이라같이 썩지 않은 어여쁜 가난을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가장 오래된 신성이 불민한 땅 위에 병처럼 번져 누대로 세습된 열렬한 종교 같은 것이어서 흰 사발같이 고요한 허기로 의연한 슬픔의 눈으로 엎드려 밥을 비는 것 저 육신을 업고 있는 큰 입은,..

한줄 詩 2020.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