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허(虛)씨 육형제 - 황원교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는 허씨 육형제가 산다
허전한, 허망한, 허무한, 허황한, 허송한, 허탈한
같은 돌림자를 갖고
내 심장의 방 한 칸씩을 차지하고 사는
철면피 육형제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철저한 에고이스트들
걸핏하면 나의 눈물을 쏙 빼거나
절로 한숨짓게 만드는
쌩 날건달들이다
명색이 집주인으로서 철도 들만큼 들었지만
인내심은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오랜 세월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산 낯짝 두꺼운 놈들에게
수시로 방을 빼라고 닦달을 해보지만
여전히 들은 척도 안 하는
참으로 뻔뻔한 세입자들, 허씨 육형제
나를 더욱 슬프게 하는 일은
어느덧 내가 그들의 눈치를 살피는
꼰대가 되어 간다는 사실
*시집, 꿈꾸는 중심, 도서출판 시가
봄비 내리는 삼천포 앞바다
지나온 길은 왜 아련하고 눈물 나는 것일까
지나온 시간은 왜 그립고 아픈 것일까
척후병처럼 드문드문 서 있는 섬들은
팔과 어깨로 단단히 스크럼을 짜고
켜켜이 몰려오는 해풍과 파도에 맞서고 있다
오후 네 시를 가리키는 시곗바늘 방향으로
열쇠 구멍 빠져나가듯 위태로이 떠가는
고깃배 한 척
파도에 온몸 부딪히며 푸른 멍들고 있다
생각해 보면
삶은 항상 위태로운 것 아니,
날마다 고해(苦海)에서 울렁거리는
뱃멀미를 참아내는 일
그대 잠시 길을 잃고 방황한다면
절대로 잠들지 않는 삼천포 앞바다에 서보라
아쉽고 그리운 것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건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되고
출렁거리는 삶은 수평선 너머를 꿈꾸게 한다
다만 숨을 멈추게 될 그날까지
저 파도들처럼 쉼 없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
길 가던 작은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아 젖은 날개를 털며
불어오는 해풍에 파르르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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