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꽃길 - 육근상

꽃길 - 육근상 시오 리 벚꽃길이다 저 꽃길 걸어 들어간 할머니는 벼룻길 활짝 피려 했던 것인데 아버지 손잡고 얼마나 멀리 갔을까 훌훌 버리고 얼마나 낯선 길 들어섰을까 걸어간 자리마다 벗어놓은 흰 옷들 가지런하다 할머니 들어간 자리 아버지 들어가 뿌리 내리고 꽃가지 마다 아이들 내어 달빛달빛 흔들리고 있다 *시집, 만개, 솔출판사 滿開 - 육근상 꽃놀이 갔던 아내가 한 아름 꽃바구니 들고 흐드러집니다 선생님한테 시집간 선숙이 년이 우리 애들은 안 입는 옷이라고 송이송이 싸준 원피스며 도꾸리 방 안 가득 펼쳐놓았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없이 온종일 살구꽂으로 흩날린 곤한 잠 깨워 하나하나 입혀보면서 아이 예뻐라 아이 예뻐라 # 육근상 시인은 1960년 대전 출생으로 1991년 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한줄 詩 2020.04.18

목련 - 사윤수

목련 - 사윤수 너는 사월의 폭설 송이송이 주먹만 한 함박눈이 허공에 가득 떠 있는 벽화야 백 년을 한순간이라 생각하고 눈 감았다 떠봐 그럼 하얀 새떼가 점묘법으로 내려앉아 있는 것도 보여 목련은 나무에 피는 연꽃 꽃이 만발했다는 건 거기 나무 위에 목련존자 한 채가 가부좌 틀고 있는 거라네 언젠가 내가 비틀거리며 나무를 세차게 흔들어 그를 떨어지게 한 적이 있다는데 나는 기억이 없네 멀리서 보면 목련꽃 핀 나무는 그게 아주 크고 둥근 꽃 한 송이야 지난밤 누가 그 꽃의 목을 단숨에 베어 버리자 하얀 새떼가 화르르르 날아올랐어 깃을 치며 어둠 속 높이 사라져갔어 이 모든 것이 꽃 너머의 꽃 얘기 당신과 나의 짧고도 긴 해후였으니 어디쯤에서 목련존자는 투덜거리며 일어나 흙을 털고 있겠지 폭설의 꽃잎도 고요..

한줄 詩 2020.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