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현무암 각질 서비스 - 김요아킴

마루안 2020. 4. 16. 22:03



현무암 각질 서비스 - 김요아킴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걸을수록

아래로 아래로 퇴적되는 낯두꺼움, 이제는

그 관성으로 통증마저 빼앗겨버린


닿지 않아야 할 곳을 밟을수록

밑으로 밑으로 몰려오는 묵은 마음, 결국

그 관행에 부끄럼마저 실종돼버린


훌러덩 맨살로 대면하는

욕탕의 전신 거울 속으로

나의 발바닥을 비벼대는


세월의 앙금 다 풀어내지 못한 섬, 용머리해안

좌판에서 칭얼대는 돌 하나가

무사히 뭍으로 상륙하고


그날따라 비바람에 구멍은 더 젖었지만

교실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즐거웠고

또 다행히 이렇게 살아남아


요리조리 벗겨지지 않는 지독함이

폭발한 화산, 4월의 그 울음이 멎은 틈 사이로

마침내 시원하게 휩쓸려오고 있다



*시집, 공중부양사, 도서출판 애지








불턱 방담(放談) - 김요아킴


서로의 심장에 총탄을 재던 그해 六月, 고향 갯가로 끌려나온 무수한 유령들이 광목천에 묶이어 역사 저 편으로 수장되었다는 어른들의 음계 낮은 목소리를 들으며

문득 남도의 외로운 섬 하나가 떠올랐다


그 총알이 왼쪽 눈에 깊은 슬픔으로 커져, 三月의 차가운 물 밖으로 떠올라 증인으로 서자 고향의 수많은 발자국들이 거리거리에 찍어놓은 분노를 활자로 읽으며

그 섬마을의 하도리가 생각났다


한 치의 틈도 내주지 않은 고향의 날선 목소리 속에, 태어나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사진 속의 인물을 용의자로 지목하자 낯선 국방색 표지들이 두더지처럼 十月의 마음을 도굴하는 장면을 눈으로 지켜보며

그 하도리의 불턱이 자꾸 스쳐갔다


골다공증을 앓는 아낙들의 숨비소리가 쌓아올린 부도,


매일같이 저승의 문턱을 닳아 없앤 물질을 제쳐두고

한지보다 메마른 젖가슴을 아이에게 물리며

한라에서 불어오는 四月의 냉기어린 들숨마저 화톳불로 이겨내는


영원한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 김요아킴 시인은 1969년 경남 마산 출생으로 경북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2003년 계간 <시의나라>와 2010년 계간 <문학청춘>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가야산 호랑이>, <어느 시낭송>, <왼손잡이 투수>, <행복한 목욕탕>, <그녀의 시모노세끼항>이 있다. 이 시집이 여섯 번째 시집으로 본명은 김재홍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일의 예감 - 박일환  (0) 2020.04.17
바닥에 대하여 - 조현정  (0) 2020.04.16
꽃소식입니까 - 이은규  (0) 2020.04.16
가장 오래된 유적 - 이철수  (0) 2020.04.12
세입자 허(虛)씨 육형제 - 황원교  (0) 2020.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