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쇳밥 - 김종필 시집

가능하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 있는 시인을 찾아 읽으려고 한다. 천성이 아웃사이더 기질이라 남이 하는 것 따라 하기 싫고 누구나 읽는 책 별로 읽고 싶지가 않다. 유행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소리를 듣더라도 이 천성은 못 고친다. 한티재에서 좋은 시집을 많이 낸다. 거의 알려지지 않고 지방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말하면 지방 홀대하는 것이냐 할지 모르겠으나 시인도 서울에 있는 유명출판사에서 시집 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어떤 철없는 시인은 시집 전문출판사인 모모사에서 시집 안 낸 사람은 시인 명함 내밀지 말라고 했다던데 시인도 사람일진데 왜 나쁜 시인이 없겠는가. 시 쓴다고 모두 선한 눈매를 가졌을 리 만무하고 심성이 불량하고 질이 나쁜 시인도 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네줄 冊 2019.05.09

약자를 위한 현실주의 - 이주희

가끔 나는 어쩌다가 한국인으로 태어났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의지와 상관 없이 세상에 나왔는데 살다보니 한국인이다. 우리 조상이 그렇게 외세의 침공을 받으면서 이렇게 살아 남은 것도 대단한 일이고,, 이 책은 교육방송에서 역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주희 피디가 썼다.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보지 않았으니 잘 모른다. TV를 거의 보지 않기도 하지만 봤다 해도 책으로 읽은 것만 하겠는가. 나는 영상보다 활자로 접하는 것이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어쨌든 한 편의 장편 다큐멘타리를 본 것처럼 흥미있게 읽었다. 대강 알고 있던 역사적 배경을 되새기거나 아님 전혀 몰랐던 사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든 국가든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절실하게 깨닫는다. 역사적으로..

네줄 冊 2019.05.08

지상제면소 - 한우진 시집

지난 주에 4박 5일 동안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작년까지 제주길은 완주하려고 계획했으나 코앞에서 자꾸 일이 생겨 실행하지 못했다. 모든 일에는 하는 것보다 안 하는 이유를 더 앞세우는 법, 올해는 일단 떠나고 보자는 심사로 달려 들었다. 하루는 비 오고 하루는 흐리고 나머지는 화창했다. 날씨가 많은 도움을 준 운수 좋은 여행길이었다. 여행길의 배낭은 단추 하나라도 덜어낼 정도로 최소한의 무게여야 한다. 그래도 시집 한두 권은 넣어야 하는데 이번에 이 시집으로 결정했다. 며칠 전부터 한우진의 를 읽으며 공연히 싱숭생숭 하던 차였다. 단물이 쉽게 빠지지 않는 시가 많아 오래 두고 읽기에 딱이었다. 숙소에서 아니면 무릎에 휴식을 주는 커피집에서 쉬엄쉬엄 읽은 시집이다. 한우진의 시는 읽을수록 묘한 매력에 빠..

네줄 冊 2019.05.03

마흔의 몸 공부 - 박용환

나이를 먹어갈수록 건강에 관한 정보에 눈길이 간다. 그렇다고 보양식을 찾아 몸에 좋은 음식이라면 불원천리를 마다하는 유난을 떨고 싶지는 않다. 되레 보양식이 싫어 기피한다. 기피가 아니라 혐오한다. 지인 중에 유난히 보양식을 밝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몸에 좋은 것이라 해서 노루피, 곰쓸개, 뱀소주 등을 먹어 봤다고 했다. 그럴 때면 부럽다기보다 이질감이 생긴다. 대놓고 면박을 주진 않지만 속으로 딱하다는 생각도 한다. 차라리 불룩 나온 뱃살이나 먼저 해결하시지. 이 정도가 그에 대한 비웃음이다. 친구 중에 유난히 한의원을 자주 가는 사람도 있다. 그의 어깨나 등, 허리에는 뜸을 뜬 자국이 선명하다. 침도 자주 맞는다. 그러면서도 자주 아프다고 병원을 간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병원과 한의원을 증상에 따라..

네줄 冊 2019.04.19

소와 훍 - 신나미 교스케

며칠 전에 일본이 WTO에 제소한 후쿠시마 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에 대한 소송에서 한국이 승소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나도 탈원전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작년부터 읽으려고 찜해둔 이 책을 이번 기회에 읽었다. 이 책은 일본의 르포 작가인 가 직접 후쿠시마 원전 오염 지역을 답사해서 쓴 책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덮치면서 일어났고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와 함께 최악의 원전사고였다. 당연 원전에서 반경 20킬로까지의 지역이 출입제한 구역으로 지정된다. 좀더 먼 지역을 포함해 귀환 곤란 구역, 거주 제한 구역 등 몇 개의 등급으로 제한 구역을 나누는데 저자는 당국의 출입 허가를 받아 그런 지역을 출입할 수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에 그 지역은 쑥대밭이 되었다. 그곳에 살던 ..

네줄 冊 2019.04.16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 김서령

그런 표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글에 취한다는 말이 있다면 김서령의 글을 읽고 난 후에 딱 맞는 표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김서령의 문장에 제대로 취했다. 는 김서령의 유고집이다. 내가 유독 유고집에 열광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서정적인 제목을 가진 책을 놓칠 수는 없다. 가만,,그녀의 글을 읽은 기억이 있던가. 책을 읽기 전에는 가물가물했는데 이 책 몇 군데 구절에서 윤택수가 언급되는 걸 보고는 단박에 예전에 읽었던 그녀의 글이 생각났다. 그렇군. 바로 윤택수에 열광했다던 작가 김서령이었다. 나는 윤택수도 김서령도 만난 적이 없으나 글로 연결된 인연이다. 촌놈은 이런 문장에서 사르르 무너진다.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글이 왠지 슬프다. 그녀는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남기고 몇 달 전인 2018년 1..

네줄 冊 2019.03.18

너는 검정 - 김성희 만화

만화는 잘 보지 않은데 이런 책은 꼭 읽는다. 은 만화다. 보통 만화는 본다고 얘기하지만 이 책은 읽는다고 하는 게 맞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만화를 읽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서점을 어슬렁거리다 책 표지 그림에 눈길이 갔다. 만화인지도 모르고 집었는데 만화책이다. 몇 장 들추다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내용이어서 단박에 호기심이 생겼다. 예전에 툭 하면 배낭을 메고 여행길에 나설 때 겨울 여행은 늘 탄광촌이었다. 태백, 사북, 고한, 자미원, 구절리 등 아직도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는 역 이름이다. 조금 아래인 봉화나 점촌의 탄광촌도 비슷한 풍경으로 남았다. 춥고, 거무스름하고, 을씨년스럽고, 쓸쓸하고,, 그래도 이런 곳을 다녀오면 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견고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해질 무렵에 도착하거..

네줄 冊 2019.03.12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 김사이 시집

기다렸던 시집이다. 김사이 시인은 단 한 권의 시집으로 내 가슴에 박힌 시인이다. 첫 시집에서 노동자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세상의 부조리를 극복하려는 희망적인 몸짓이 인상적이었다. 쉬운 길로 그냥 묻어가지 않으려는 그녀의 반골 정신도 마음에 들었다. 거창하게 등단만 하고는 시 쓰기를 멈춰 잊혀진 시인도 있고 첫 시집 내고 영영 소식이 없는 시인도 있다. 한번 시인은 영원한 시인임을 증명하듯 시는 안 쓰고 잡문만 써서 시인이라는 이름표을 오래 울궈 먹는 사람도 있다. 김사이 시인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중견 시인과 혼동될 때가 있다. 처음 이 시인을 접했을 때도 김사인 시인의 받침을 뺀 실수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김사이는 구로노동자문학회 출신의 여성 시인이다. 노동자 출신답게 말랑말랑한 시를 쓰지 않는다...

네줄 冊 2019.03.08

부동산 공화국 경제사 - 전강수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푹 빠져서 읽은 책이다. 그만큼 몰입해서 읽게 만드는 주제였다. 토지공개념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거니와 오늘날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늘 뜨거운 감자다. 어쨌거나 이 문제는 꼭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전강수 선생은 예전에 몇몇 매체에 실린 칼럼을 읽고 진보적인 경제학자로 알고는 있었으나 저서를 읽은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헨리 조지의 명저인 진보와 빈곤을 필두로 평생을 토지제도를 정의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으로 연구를 해온 학자다. 이 책은 도표와 통계 등 경제에 관심이 덜한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 부동산 문제를 아주 흥미롭게 기술했다. 경제 분야가 딱딱하기 십상인데 아마도 논리적인 글솜씨 덕도 있겠다. 어쨌든 학자는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지..

네줄 冊 2019.03.05

달빛 노동 찾기 - 신정임, 정윤영, 최규화 외

이 책은 야간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세 명의 저자가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야간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고 그 기록을 책으로 묶었다. 세상엔 참 많은 직종이 있지만 밤에 일하는 사람들처럼 알려지지 않는 직종이 있을까. 나부터 자정 이후에 집밖에 있어 본 적이 한참 되었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한다는 다짐으로 많은 곳에서 만남을 줄였다. 회식도 무조건 1차에서 끝낸다. 원하는 사람은 2차든 3차든 상관하지 않으나 나는 과감하게 빠져나온다. 옛날 같으면 내가 나서서 2차를 가자고 선동했을 것이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자정 넘어 귀가했을 것이다. 동호회 모임도 술로 지새우는 모임은 아예 발길을 끊었다. 전화번호 정리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끝마무리가 미지근한 사람을 지우는 일이었다. 휴일 전날은 언제나 새..

네줄 冊 2019.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