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너는 검정 - 김성희 만화

마루안 2019. 3. 12. 22:10

 

 

 

만화는 잘 보지 않은데 이런 책은 꼭 읽는다. <나는 검정>은 만화다. 보통 만화는 본다고 얘기하지만 이 책은 읽는다고 하는 게 맞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만화를 읽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서점을 어슬렁거리다 책 표지 그림에 눈길이 갔다. 만화인지도 모르고 집었는데 만화책이다.

몇 장 들추다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내용이어서 단박에 호기심이 생겼다. 예전에 툭 하면 배낭을 메고 여행길에 나설 때 겨울 여행은 늘 탄광촌이었다. 태백, 사북, 고한, 자미원, 구절리 등 아직도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는 역 이름이다. 조금 아래인 봉화나 점촌의 탄광촌도 비슷한 풍경으로 남았다. 춥고, 거무스름하고, 을씨년스럽고, 쓸쓸하고,, 그래도 이런 곳을 다녀오면 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견고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해질 무렵에 도착하거나 해뜰 무렵에 도착할 때가 많았다. 진눈깨비 섞인 눈발이 날리거나 칼바람이 몰아치는 낯선 역에 내리면 우선 따뜻한 방바닥을 찾아 나섰다. 근처 여인숙에 들면 연탄불에 절절 끓던 아랫목의 캐시미론 이불 속으로 발을 넣으면 나른하게 내려 앉던 여행길의 피로에 스르르 눈이 감겼다.

윗목에는 작은 쟁반에 양은 주전자와 플라스틱 물컵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옆에 성냥갑과 재떨이가 다정하게 마주하고 있다. 자주색 목단꽃이 그려진 커튼이 쳐있던 창문과 군데군데 담뱃불 자국이 생채기처럼 남아 있던 여인숙 방바닥 비닐 장판이 그립다. 

만화 내용은 진짜 구질구질하다. 내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인천의 달동네도 구질구질 하기가 이에 못지 않았다. 이 만화를 읽으면서 탄광촌에도 계급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석탄회사에서 직접 고용한 광부와 하청 업체에서 고용한 광부의 처우가 달랐다. 사는 집을 보면 광부의 신분을 알 수 있었단다.

직접 고용된 광부는 그런대로 반듯한 사택에 살았으나 하청 고용 광부는 판자나 기름종이로 얼기설기 지은 허름한 간이 주택이었다. 물론 간부는 연립 아파트에서 살았다. 어른들은 그랬을지 몰라도 아이들은 그런 구분 없이 서로 어울리며 성장한다.

내용은 광부를 아버지로 둔 창수가 아프게 성장하는 과정이다. 친구를 골탕 먹이는 장난기와.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싶은 불량기와, 공부 잘하는 큰형과의 차별이 불만인 반항기가 섞여 한 소년을 단단하게 성장시킨다. 가난을 모르고 오직 시험공부로 의사나 판사가 된 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할 내용이다.

빨리 어른이 되어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데 아버지는 진폐증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고 친구 아버지는 사고로 죽는다. 세상은 하라는 것보다 하지 말라는 것이 더 많은 법, 그래 아이들은 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을 게다. 원래 인생이란 이렇게 고달픈 것인가.

창수는 학교의 부당한 처사에 반기를 들고 수업 거부 데모를 주동했다가 징계를 받는다. 연루된 부모들은 무조건 고개를 숙이지만 창수는 그것마저 불편하다. 학교는 고등학생을 쫓아내면서 학생에게 이런 죄목을 붙인다. 좌익용공, 빨갱이,, 지금도 여전히 먹히는 죄목이다. 창수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당당하게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