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지상제면소 - 한우진 시집

마루안 2019. 5. 3. 22:20

 

 

 

지난 주에 4박 5일 동안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작년까지 제주길은 완주하려고 계획했으나 코앞에서 자꾸 일이 생겨 실행하지 못했다. 모든 일에는 하는 것보다 안 하는 이유를 더 앞세우는 법, 올해는 일단 떠나고 보자는 심사로 달려 들었다.

하루는 비 오고 하루는 흐리고 나머지는 화창했다. 날씨가 많은 도움을 준 운수 좋은 여행길이었다. 여행길의 배낭은 단추 하나라도 덜어낼 정도로 최소한의 무게여야 한다. 그래도 시집 한두 권은 넣어야 하는데 이번에 이 시집으로 결정했다.

며칠 전부터 한우진의 <지상제면소>를 읽으며 공연히 싱숭생숭 하던 차였다. 단물이 쉽게 빠지지 않는 시가 많아 오래 두고 읽기에 딱이었다. 숙소에서 아니면 무릎에 휴식을 주는 커피집에서 쉬엄쉬엄 읽은 시집이다.

한우진의 시는 읽을수록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압축과 생략과 비유가 절묘해서 반복해서 시를 읽게 만든다. 조금 긴 시에서도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 밀었다 당기며 자유자재다. 이건 시적 내공과 함께 자기 시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다.

시인의 개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시가 단박에 이해 되지 않으나 두세 번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詩汁이 입안에 가득 고인다. 행간에 숨어 있는 싯구를 찾느라 저절로 천천히 읽게 만든다. 때론 비속어가 등장하지만 되레 고급스럽다.

그의 첫 시집에서 보여준 독특한 개성은 이 시집에도 여전하다. 평론가들도 어디서 갈피를 잡아야 할지 난망할 시가 많다. 천상 나처럼 무식한 아마추어가 제격이다. 내 맘대로 읽고 얼치기 감상을 후기랍시고 써도 되니 말이다.

어려운 漢字가 제목으로 쓰인 경우가 많아 간만에 없는 옥편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모르는 글자에 부닥치면 어떻게 해서든 알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 때문이다. 시집 목차에 나오는 제목을 보고는 무슨 뜻인지 명확히 모른다.

채탐, 치빙, 쇄석, 굴신, 탈관, 전결, 치월, 무광, 경야, 은산, 심인광고, 십면매복, 증정비수 등 두 자든 넉 자든 제목 보고는 금방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것도 제목이라고 붙였나? 시인은 본문에서야 한자 표기를 해주는 친절을 베푸는데 그때서야 가늠이 된다.

추수가 가을걷이를 말하는 줄 알았다가 본문에선 醜手다. 이 표기를 단 시에서 세상에 보내는 냉소와 비꼼에 탄복한다. 흔히 나누는 1부니 2부니 하는 구분도 단편연작소설 제목처럼 낯선 외국어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한자 조어를 섞어 적절하게 배치했다.

인용한 문구가 많아 시집 뒷편에 따로 실은 주석을 읽기 위해 뒷장을 자꾸 펼치면서 읽은 시집도 처음이다. 반면 개성 만점의 이 시집을 비평한 글은 귀하다. 시집 첫 장에 <나는 종소리를 진흙 속에 파묻는다>라는 제목으로 일종의 시집안내서에 이런 문구가 있다.

<비평은 텍스트를 위해서, 시를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 비평은 메아리(울림)를 위해 텍스트에 가한 충격(음)을 제거하는 것, 악화시키는 것, 비우는 것에 복무해야 한다. 덧붙이고 채우는 것은 나쁜 비평이다>. 이 시집은 출간한지 2 년이 다 된다.

시집 제목인 지상제면소도 池上製麫所다. 가히 시인다운 기발한 제목이면서 한편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이 시집의 가격은 시집치고는 많이 비싸다. 정가 49.000 원,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두꺼운 사진집도 아니고 과연 5만 원 가까이 하는 시집을 사 볼 독자가 몇 명이나 될까. 본전을 뽑기 위해 시집을 자주 펼친다. 제주 여행길에서도 여러 번 읽었다. 이 시집은 접었다 펴길 몇 번쯤 해야 겉장이 떨어져 나갈까. 오늘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