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쇳밥 - 김종필 시집

마루안 2019. 5. 9. 19:57

 

 

 

가능하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 있는 시인을 찾아 읽으려고 한다. 천성이 아웃사이더 기질이라 남이 하는 것 따라 하기 싫고 누구나 읽는 책 별로 읽고 싶지가 않다. 유행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소리를 듣더라도 이 천성은 못 고친다.

한티재에서 좋은 시집을 많이 낸다. 거의 알려지지 않고 지방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말하면 지방 홀대하는 것이냐 할지 모르겠으나 시인도 서울에 있는 유명출판사에서 시집 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어떤 철없는 시인은 시집 전문출판사인 모모사에서 시집 안 낸 사람은 시인 명함 내밀지 말라고 했다던데 시인도 사람일진데 왜 나쁜 시인이 없겠는가. 시 쓴다고 모두 선한 눈매를 가졌을 리 만무하고 심성이 불량하고 질이 나쁜 시인도 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세상은 살 만하고 인생이 아름답지 않을까. 내 친구 중에 김종필이 있다.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으나 다소 허언증이 있는 친구였다. 학교 다닐 때 김종필이란 정치인이 실세여서 이름만 기억이 남는 친구다.

이 시집의 저자도 이름 때문에 시인 냄새가 별로 안 난다. 그러나 쇳밥이라는 제목이 이름 만큼이나 강렬하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시집을 들췄는데 단박에 빠져들었다. 잘 읽히는 시, 쉬운 어휘에 의도가 뚜렷해서 좋다.

노동자 출신 시인들이 대체로 단단한 시를 많이 쓴다. 그래서 서정성이 다소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시인 박노해 초기시도 너무 단단해서 시적인 감동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군가가 귀에 확 들어오긴 해도 반복해서 듣고 싶지 않은 이치다.

김종필의 시는 노동 현실을 아프게 파헤치면서도 촉촉한 서정성을 보여 준다. 쓴맛이 조금씩 단맛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랄까. 그의 시를 눈으로 읽고 나서 다시 입으로 가만히 읽어 보면 금방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다.

 

궁둥이로 쓴 뜬구름 잡는 서정이 아니라 지문으로 쓴 서정이다. 여기서 오는 감동은 오래 가슴에 남는다.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이 육체 노동자여서 얼마나 다행인가. 쇳밥이란 단어는 무거우면서 거룩하다. 언젠가부터 노동에 계급이 생겼다. 

 

굳은 살 박힌 손으로 떠먹는 밥이 진짜 정직한 밥이다. 이렇게 절박하면서 거룩한 밥이 또 있을까.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말이 있지만 밥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 밥그릇 재질이 어떻든 돈을 먹을 순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쇳밥을 먹을 필요는 없다. 화려하고 푸짐한 부자의 밥상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오래 전 어떤 점쟁이가 그랬다. 나는 운명을 잘못 타고 났다고,, 맞다. 나는 스스로도 고칠 수 없는 불량품이다. 

이왕 세상에 나온 것, 고맙게 생각하며 이렇게 살다 가겠다. 이런 울림을 주는 시나 읽으면서,, 시가 밥을 먹여주지는 않지만 쇳밥, 오래 씹으면서 먹어 볼 만한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