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뭔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4번 출구 - 서광일 시집

더운 날일수록 시집을 더 손에 잡게 된다. 누가 그랬던가. 독서의 계절은 가을이라고,, 책 읽는 계절이 따로 있을 리 없지만 내겐 여름이 책 읽는 계절이다. 꽃 피는 봄과 하늘 높은 가을엔 올해가 마지막일 것처럼 들로 산으로 쏘다니기 바쁘니 더욱 그렇다. 파란 출판사의 시집을 유심히 본다. 정확하게는 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으로 이름이 길다. 신생 출판사인데 몇 개의 시집은 나와 코드가 맞아서 놓치면 아까울 정도다. 요즘 새로 생긴 여러 출판사에서 시집을 많이 낸다. 잘만 고르면 좋은 시집을 만날 수 있다. 드디어 까다로운 내 취향을 비껴가지 못한 시집을 만났다. 라는 독특한 제목을 가진 시집이다. 보라색 표지에 담긴 시들이 하나도 그냥 넘길 수 없을 정도로 밀도 있게 마음에 와 닿는다. 흔히 보라색이 귀족(..

네줄 冊 2019.07.18

아주 특별한 해부학 수업- 허한전

해부학 책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이렇게 흥미로우면서 감동적이다. 이 책을 쓴 사람은 대만 츠지 대학에서 해부학을 가르치고 있는 허한전(何翰蓁) 교수다. 츠지대는 대만 중부지방에 위치한 화련에 있는 대학으로 역사는 길지 않으나 의과대학으로 유명하다. 이 책의 저자와 그가 일하고 있는 대학의 한문 표기를 봤다. 대만의 한자가 중국 본토에서 쓰는 간체가 아니라 우리가 쓰는 한자와 비슷해서 읽기가 수월하다. 츠지대학(慈濟大學)에는 사랑으로 구제한다는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있고 불교 냄새가 풍긴다. 츠지대학은 자제회(慈濟會)라는 불교재단이 설립한 학교로 대만 최고의 의과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허한전 교수의 이름도 한문 풀이를 해보면 이름에서 사람의 성품을 읽을 수 있다. 좋은 책을 읽은 뒤가 이렇게 대학에서 저자..

네줄 冊 2019.07.17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 아누 파르타넨

얼마전에 영국 런던의 주택가 정원에 느닷없이 시신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경찰 조사 결과 아프리카 케냐에서 출발한 비행기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비행기 객실에서 추락한 것이 아니라 착륙장치에 몰래 숨어 밀입국을 시도하다 떨어진 것이다. 그전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몇 번 있었는데 그들도 착륙장치에 숨어 있다 떨어졌다. 도시에 떨어졌으니 발견 되었지 만약 산악 지대나 망망대해 바다에 떨어졌으면 이런 일이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비슷한 밀입국 시도가 훨씬 많을 것이라는 얘기다. 세계에서 미국은 밀입국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나라다. 여행을 하려고 해도 미국은 가장 비자 받기가 까다로운 나라다. 광대한 멕시코와의 국경에 철책을 둘러 감시하고 툭 하면 총기 사고가 일어나는 미국에 왜 사람들은 그렇게..

네줄 冊 2019.07.07

골목 도쿄 - 공태희

도쿄를 두 번밖에 가보지 못한 내가 단번에 사랑하게 된 책이다. 명소를 돌아보는 여행이 아닌 뒷골목 탐방에 훨씬 관심이 많은 나로써는 딱 구미가 당기는 내용이다. 도쿄 뿐인가. 런던, 더블린, 빠리, 리스본도 관광 명소보다 뒷골목이 내겐 더 매력적이었다. 원래 걷기를 좋아하지만 작년 가을부터 걷기 여행에 한참 빠져 있다. 언제나 여행을 꿈꾸지만 훌쩍 떠날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줄어든다. 대신 이런 책으로 대리 만족을 하는 일이 늘었다. 서점에서 도쿄 골목이라는 제목에 꽂혀 저자 약력부터 봤다. 나를 닮은 사람의 책일수록 공감가는 내용이 많다. B급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B급 영화와 음악을 좋아한다는 프로필이 마음에 들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여행을 하는 나에 비해 저자의 여행이 다소 요란해 보이..

네줄 冊 2019.07.03

눈 한번 감았다 뜰까 - 조항록 시집

줄곧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던 시집이다. 며칠 다녀온 여행길에 동행했던 시집이기도 하다. 여행길 배낭은 가능한 짐을 줄여야 하기에 두꺼운 책은 부담스럽다. 시집이 우선인데 그 조건은 단 한 가지, 여러 번 읽어도 단물이 빠지지 않는 시다. 딱 한 권 넣어 가는데 당연하다. 시는 반복해서 읽어야 가슴에 온전히 박히지만 어디 그런 시가 흔하던가. 세상엔 시인도 시집도 많고 많지만 좋은 시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시집 한 권에 뱐복해서 읽을 만한 시가 많이 실린 경우는 더욱 드물다. 까맣게 잊고 있던 사람의 시집을 뱔견할 때가 있고 곧 시집이 나올 것으로 마음에 둔 시인도 있다. 조항록 시인이 그렇다. 학수고대는 아니어도 조만간 시집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예감하고 있었다. 이런 시집을 만나면 읽기도 전..

네줄 冊 2019.06.28

강남을 읽다 - 전상봉

서울 강북에서만 38 년째 살고 있어서일까. 같은 서울인데도 강남이 먼 나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서울에 처음 정착하고 2년 후 옆 동네로 딱 한 번 이사를 하고는 36 년째 한곳에서 살고 있다. 앞으로도 이사갈 일은 없을 듯하다. 애초에 투자에는 관심이 없었다. 재산 형성의 가장 좋은 방법은 땀흘려 번 돈 푼푼히 적금 들고 만기 되면 정기예금으로 갈아타는 것이 최고라고 여긴다. 평생 복권 한 장 사본 적 없고 요행을 바라며 도박장 부근을 기웃거리다 심심풀이 도박을 해본 적 없다. 그저 곰처럼 일하면서 틈틈히 책 읽고 영화나 전시회장 다니고 휴가에는 여행을 가는 것이 최고의 호사다. 휴가도 젊었을 적 몇 번 성수기에 갔을 뿐, 철저히 성수기를 피해 간다. 비수기 여행이 번잡스럽지 않고 경비도 절약 되고..

네줄 冊 2019.06.23

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 김언

어디서 그런 집중력이 생겼는지 아주 진지한 마음으로 읽은 책이다. 시인한테는 미안한데 김언은 시보다 비평글이 더 좋다. 그의 비평글은 묘하게 읽는 이를 집중하게 만든다. 문장에 공감하며 거기에 빨려들게 만드는 재주는 전적으로 글쓴이에게 달렸다. 아주 시적인 제목이 붙은 이 책은 시론집이라고 하지만 어렵지 않게 읽힌다. 많은 평론가들이 온갖 문학 이론과 고상한 문장을 동원해 독자를 주눅 들게 만드는데 이 책은 쉽게 이해가 된다. 시에 관한 시인의 생각을 따라가다보니 어느덧 마지막 장이다. 근래에 이렇게 집중해서 읽은 책이 있었던가. 모처럼 책다운 책 읽은 기분이다. 혀를 뽑아 삼킬 듯이 숨막히는 키스와 함께 허벅지가 뻐근하도록 격렬한 섹스를 하고 나면 며칠 섹스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있..

네줄 冊 2019.06.12

미학 수업 - 문광훈

문광훈 선생의 책을 또 읽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지만 글을 참 잘 쓴다. 대학 교수이면서 끊임없는 연구와 책읽기로 지식의 끈을 놓지 않는 양반이기도 하다. 그러나 왠지 이분 강의는 재미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말은 선생이 강의보다는 책으로 독자를 만나는 게 더 낫겠다는 말이다. 책 제목이 이라 교양 과목 강의 교재처럼 느껴지지만 일반인의 예술 안목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이다. 하긴 대학 초급생 교양 강좌 교재로도 손색은 없다. 언제부터 학교가 초중고는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장이고 대학은 취업을 위한 학점 공장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교양은 뒷전이거나 사는데 별 도움이 안 되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속보다 겉을, 든사람보다 난사람을 더 내세우는 현실의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 책은..

네줄 冊 2019.06.10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지난 연말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책인데 여태 한쪽에 밀쳐두었다가 이제야 읽었다. 진즉에 읽으려고 신간 목록에 올라 있는 책이긴 했으나 순위에서 밀린 책이다. 나는 희한하게 광고가 요란하고 저자가 여러 매체에 나와 설치는 책은 되레 멀리하고 싶다. 그래서 서점 앞자리에 줄줄이 진열된 베스트셀러 잘 안 읽고 그 많은 천만 영화도 극장에서 본 것은 변호인 빼고는 없다. 안 봐도 그리 아쉽지 않고 언제 기회가 있겠지 뭐 이런 생각으로 지나친다. 그러다 영영 만나지 못한 작품이 많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책에 큰 만족을 못 느낀 것도 그런 이유다. 가능한 숨어 있는 책을 읽으려는 생각, 좋은 저자를 발견한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영화도 저예산 영화가 좋다. 출판사도 책을 선택하는데 중요하다. 한겨레출판은 좋..

네줄 冊 2019.05.30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 박서영 시집

이 시집을 읽고 박서영 시인을 알았다. 내가 시를 전문적으로 읽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동안 문예지에 발표하는 시라도 읽었을 법한데 박서영의 시를 읽을 기회가 없었다. 뒤늦게 인연이 닿은 그녀의 시를 꼼꼼히 읽어볼 요랑이다. 나는 유독 유고 시집에 집착한다. 유고 시집을 달고 나온 시집은 가능한 읽는 편인데 이 시집은 제목부터 유독 눈길을 끌었다. 시인을 검색하자 다른 유고 시집이 또 있다. 작년 초에 세상을 떠난 시인의 1주기에 맞춰 올해 두 권의 유고 시집이 나온 것이다. 일단 두 권 다 읽었다. 하나는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출판사에 시집 의뢰를 한 것이고 이 책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 유족과 지인들에 의해 나온 1주기 시집이다. 족발집처럼 원조 따지자는 것은 아니나 엄연히 말하면 이 책이 진짜 ..

네줄 冊 2019.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