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책벌레의 여행법 - 강명관

이 양반이 쓴 책은 꼭 읽는다. 글이란 것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닐 테지만 성품은 어느 정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강명관 선생의 삶은 참으로 풍요로울 거라는 질투심을 느낀다. 지성인의 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쁘다. 그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다. 나는 우리 사회가 교수라는 직업을 호칭 삼아 그대로 부르는 묘한 관습이 거슬리는 사람이다. 의사님, 공무원님, 회사원님 이렇게 부르는 것은 어색해 하면서 교수님이라 부르는 것은 당연하게 여긴다. 오히려 교수 당사자들부터 자신을 교수님이라 불러줘야 제대로 대우 받고 호칭을 높인다고 생각한다. 교수든, 교사든, 의사든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맞고 단어 뜻도 선생님이 교수보다 더 높이는 말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강..

네줄 冊 2019.01.09

동양방랑 - 후지와라 신야

그의 책을 언제 읽었더라, 돌이켜 보니 오래전이다. 서른 중반이 넘도록 중심을 잡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떠돌던 친구가 훌쩍 인도로 떠났다. 그가 떠나면서 신촌의 허름한 술집에서 말한 책이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이었다. 그때가 인도 여행이 유행할 때였기에 그도 덩달아 인도 바람이 들었다. 한 달 정도 인도에 머물다 온 이후 그는 티베트를 여행했는데 그때도 후지와라 신야의 책을 읽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서점에 인도에 관한 책이 무척 많이 깔려 있었다. 여행서는 물론이고 의 책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그때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던 후지와라 신야의 책을 다시 읽었다. 두 권짜리를 한 권으로 묶어 다소 두껍고 무거운 책이다. 그때도 꽤나 감동적이었는데 다시 읽어도 역시 그의 사진과 글은 시적이면서 몽환적이다. ..

네줄 冊 2018.12.27

개저씨 심리학 - 한민

제목에 꽂혀 읽었다. 책 욕심은 많아도 명사가 추천하는 책을 믿지 않는다. 의심도 한다. 과연 그 책을 추천한 명사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행여 자신의 지식을 포장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약간의 약장수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 내쳐 읽었다. 이십대가 이 책을 읽을 리는 만무하고, 천상 어딘가 캥기는 사십대 이후의 중년들이 솔깃할 제목이다. 그래선지 글자도 큼직하고 줄 간격도 시원하다. 당연 페이지에 비해 내용물이 많이 줄어들었다. 질소 빵빵하게 넣은 양파링 스넥처럼 말이다. 기발한 처세술이나 인생 성공 사례를 말하지는 않는다. 나이 먹을수록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이 되기 쉽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몰아부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고 무심코 넘길 수 있는 ..

네줄 冊 2018.12.23

술통 - 장승욱

얼마전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처음엔 제목을 숯통으로 알고 뽑았다가 자세히 보니 술통이다. 조금 두꺼운 책이라 무슨 철학서인가 했는데 술에 얽힌 산문집이다. 약력을 보니 저자 장승욱은 우리말에 관한 다수의 책을 냈단다. 술통은 단숨에 읽게 만들 만큼 흥미가 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한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06년이고 저자는 2012년 1월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1961년 출생이니 51년을 살고 세상을 떴다. 다수의 우리말 관련서뿐 아니라 시집도 유고 시집 포함 두 권이다. 아! 이 사람 시인이었구나. 중간에 정체를 파악한 나는 시인이 쓴 산문이라 생각하며 읽었다. 술에 관한 예찬이자 담론이라 할까. 어쨌든 요즘은 내가 술을 거의 끊다시피 했으나 예전에 술이..

네줄 冊 2018.12.20

야생의 법 지구법 선언 - 코막 컬리넌

이 책은 20세기 지성이자 최고의 생태신학자였던 토마스 베리(Thomas Berry)가 제창한 지구법을 법학자인 저자가 구체적 대안을 새롭게 제시하는 책이다. 주제가 무거워서인지 술술 읽히지 않고 자주 쉬면서 읽었다. 읽다가 앞부분과 맥이 끊기면 다시 돌아가 읽기를 반복해서 완독이 다소 오래 걸렸다. 내용은 참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야생의 법이라는 단어도 생소하거니와 그 대안이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서 조금 막막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지구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법이다. 야생의 법(Wild Law), 혹은 지구법은 지구와 지구 환경을 위한 법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지만 우주의 역사로 보면 인간 또한 지구에 사는 생물 한 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편리함만을 쫓으며..

네줄 冊 2018.12.12

대한민국 독서사 - 천정환, 정종현

요 며칠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다소 두껍지만 무척 흥미롭게 읽히는 교양서다. 국문학을 전공한 문학박사 천정환, 한국학 전문가인 정종현 두 지성인의 역작이다. 한 사람이 완성하기에는 너무 영역이 넓기에 잘 조화된 집필진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의 기회가 공평하지 않았던 훈장 어른을 모시고 공자왈 맹자왈 하던 시대라면 모를까 문맹율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요즘에도 독서율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물며 글을 깨우치지 못한 사람이 많았던 옛날은 오죽했을까.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부터가 자기 이름자 겨우 알아볼 정도로 문맹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생전에 글을 읽거나 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여자가 배우면 팔자가 사나워진다고 외..

네줄 冊 2018.12.09

지민의 탄생 - 김종영

작년부터 읽어야지 했던 책이다.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새로 나온 책에 눈길이 가다 보면 목록에 있던 책들이 자꾸 뒤로 밀린다. 밀리다 보면 잊혀지고 그러다 영영 인연이 닿지 않은 책이 부지기수다. 이 책도 그럴 뻔했다. 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연이 닿아야 읽게 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어쨌든 한참 뒤로 밀린 목록에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은 퍽이나 다행이다. 김종영 선생은 예전에 읽은 책 를 읽고 알았다. 많은 철밥통 교수들이 자리 보전에만 급급하고 학문 연구에 게으른데 이 사람은 예외다. 비교적 젊은 교수여서 깨어 있는 시각과 스스로 천민이라 생각하며 자각하는 지식인이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지식인이고 대학에 이런 선생이 많아야 한다. 학점 후하게 주고 취직 잘 되게 하는 학점 공장으로 전락한 작금의..

네줄 冊 2018.12.05

일인詩위 - 김경주, 제이크 레빈 외

제목도 내용도 아주 독특한 책이다. 서점 진열대에서 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을 때부터 뭔가에 확 끌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이라는 낯선 문화 형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一人詩爲라니. 이 책은 시를 좋아하는 내게 새로운 방식의 시운동을 알려준 일인시위였다. 이 책은 네 명의 공동 작품인데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김경주 시인이다. 철학을 전공한 시인답게 아주 철학적인 시를 쓰는 그는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방면에 재능을 가진 시인이다. 진즉부터 포에트리 슬램에 관심이 있었고 이런 책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시낭송도 아니고 시극도 아닌 빠른 템포의 가락에 얹힌 시가 랩이라는 장르에 섞였다고 할까. 우리에게는 없는 문화 형식이라 딱히 뭐라 정의를 내리지 못하겠다. 어차피 나는 이 책을 활자로 된..

네줄 冊 2018.12.03

바닥의 권력 - 이은심 시집

가능하면 유명 출판사가 아닌 곳에서 발행하는 시집을 찾아 읽으려 한다. 시중 서점에서든 인터넷 서점이든 독자에게 알려지는 것부터가 중소 출판사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아예 서점에 깔리지도 못하고 구석에 자리했다 사라지는 책이 부지기수일 거다. 밥 먹는 일 빼고 매일 시집을 읽더라도 세상의 모든 시집을 다 읽을 수는 없다. 그래도 열심히 시를 찾아 읽다보면 좋은 시집도 만나고 가슴 설레는 시 속에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 시집이 그렇다. 숨어 있기 아까운 보석 같은 시집이다. 이은심 시인은 그리 알려진 시인은 아니지만 내가 마음 속에 담고 있는 시인이다. 우연히 뒤늦게 발견한 그의 첫 시집을 읽고 열렬한 독자가 되었다. 나를 설레게 했던 시인이었는데 한동안 시집을 내지 않아 잊고 지냈다. 이 시집도 우연..

네줄 冊 2018.10.31

일본적 마음 - 김응교

몇 명의 일본인 친구가 있다. 나는 일본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친일파다. 이 책도 그런 마음으로 읽었다. 학교에서 배웠던 일본에 대한 미움은 일본 사람을 경험하면서 점점 사그러들었다. 몇 번의 일본 여행에서 일본을 좋아하는 마음이 굳어졌다. 요즘 일본의 극우 인사와 아베 총리의 발언은 마음에 들지 않으나 일본 문화에 대한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라는 책 제목이 참 좋다. 내용도 실제 일본에서 공부하고 밥을 벌었던 경험과 사색에서 우러나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래 맞아, 어쩌면 내 생각과 이렇게 같을까 등 내내 공감이 가는 내용을 따라 가며 흥미롭게 읽었다. 첫장에 실린 와비사비 미학은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내가 영국에 살 때 윗층에 살았던 일본인 커플도 그랬다. 가난하리만치 ..

네줄 冊 2018.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