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눈물 이후 - 권상진 시집

요 며칠 동안 이 시집과 함께 했다. 일 나가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 달래듯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전철에서 한두 편씩 읽는 맛이 쏠쏠했다. 흔히들 요즘 유행하는 달착지근한 시는 아니다. SNS에 들불처럼 유행하는 뽀시시한 짧은 문장은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은 있을지 몰라도 공허한 갈증은 심해진다. 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세상에 시집은 넘쳐나도 읽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일까. 시집은 시인들끼리 자체적으로 소비를 한다. 일종의 시집계 내수 경제인데 시집을 내면 서로 기증하는 관행이다. 마치 경조사 부조목록처럼 저번에 받았으니 이번엔 보내야 하는 약속 같은 것이 시인들끼리 있는 모양이다. 그것도 인맥이라고 기증 시집을 많이 받는 시인이 마치 실력 있고 잘 나가는 사..

네줄 冊 2019.02.21

청년 흙밥 보고서 - 변진경

이 책은 아주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 나온 시사IN 변진경 기자의 치열한 취재기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맨 처음 등장하는 김은지 기자도 있듯이 시사인은 좋은 기자들이 일하고 있는 참 좋은 주간지다. 이 잡지를 읽어보면 얼마나 우리 삶과 밀접한 생명력 있는 내용인지를 실감한다. 흙밥, 흙수저 등 언제부턴가 흙이 들어간 단어가 생겼다. 부를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과 그로 인한 빈부 격차에서 생기는 차이를 나타내는 수치로 정착하게 되었다. 아파트와 빌라의 집값 차이로 인해 초등학생끼리도 차별을 두어 친구를 맺는다는 기사를 봤다. 조만간 흙집이라는 단어가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고급차와 경차의 차이를 빗대 흙차가 나올지도 모르고,,,, 이 책에는 암담한 청년의 현실을 파헤친 진지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제목..

네줄 冊 2019.02.17

지구를 살리는 쿨한 비지니스 - 김성우

지구도 살리면서 돈도 버는 일에 관한 책이다. 처세술과 재테크에 관한 책이 넘쳐나고 아무나 써도 그런대로 팔리는 도서 분야이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돈 버는데 목을 매고 있다는 거고 한탕을 기대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제목은 재테크 도서 같지만 날로 병들어 가고 있는 지구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기후변화에 대비해 어떤 환경 정책을 펼쳐야 하고 거기에 맞은 정책에 따라 기업 비지니스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녹색기후기금 건물이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평소 환경 변화에 관심을 두고 있으면서도 그걸 몰랐다. 모르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나 그만큼 우리 나라도 환경 보호에 앞장을 서고 있다는 증거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내가 시원하기 위해 에어컨을 틀면 실내는 시..

네줄 冊 2019.02.14

달달한 쓴맛 - 안성덕 시집

이라는 이색적인 제목이 눈길을 끈다. 서울 집중이 유난히 심한 한국이라 지방에서 만들어진 시집이 더욱 반갑다. 모든 시집을 다 사보는 것은 아니지만 모악에서 나오는 시집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다가 확 쏠리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오십대가 되면서 나도 입맛이 변했다. 쳐다보지도 않던 나물 반찬에 젓가락을 부지런히 옮기고 쌉싸름한 맛의 오묘함을 알게 되었다. 시인이 말했던 달달한 쓴맛이란 대체 무슨 맛일까. 지금까지 맛본 적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맛이다. 그의 대표시로 손색이 없는 시에서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를 절창으로 풀어냈는데 세상살이가 그렇게 명확한 맛으로 구분되어 살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집의 표제시이기도 한 달달한 쓴맛을 읽으며 소박한 어휘로 풀어 쓴 시맛을 제대로 봤다. 군대 선배 중에..

네줄 冊 2019.02.11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 곽재구

설 연휴가 끝나고 여행 배낭에서 꺼낸 이 책의 귀퉁이가 약간 닳았다. 시집 하나와 함께 이 책은 연휴 여행길에 동행을 했다. 최대한 짐을 줄여야 하는 배낭에 들어가기에는 다소 두꺼운 책이지만 나도 모르게 손길이 갔고 꽉 찬 배낭 귀퉁이에 밀어 넣었다. 이 책은 新 포구 기행이라는 부제가 달렸듯이 곽재구의 포구 기행은 오래전에 나온 적이 있다. 한 15년쯤 됐나? 그때 읽었던 포구 기행은 낯선 포구의 쓸쓸한 풍경이 아름다운 문장과 함께 긴 여운이 남았다. 마치 저자와 함께 여행하는 것처럼,,,, 한편 이 시인은 시보다 잡문으로 너무 독자를 울궈먹는다는 생각도 했다. 이번 책은 쓸쓸함보다는 씁쓸함이 앞섰다. 많이 변해버린 풍경 탓이 가장 크지만 문장도 에전처럼 쓸쓸하지가 않았다. 어쩌면 요즘의 책 읽는 세태..

네줄 冊 2019.02.08

죽는 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 하이더 와라이치

호킹 지수(Hawking Index)라는 게 있다. 아마존에서 만든 거라는데 독자에게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문장을 적으라는 설문조사에는 대부분의 인용문이 책의 앞부분이었단다. 많은 독자들이 앞부분만 읽다가 책읽기를 그만 둔다는 것을 나타낸다. 드물지만 내 경우도 이럴 때가 있다. 까다롭게 책을 고르기에 잘못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그러나 기대를 갖고 책을 골랐다가 경어체 문장의 책은 목차만 읽거나 몇 페이지 읽다가 만다. 이상하게 나는 편지 외에는 경어체 문장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잘 사질 않는 것도 그 이유다. 글쓴이에 대한 기대를 갖고 주문했다가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경어체 문장에 실망감이 확 밀려오면서 그 사람의 다른 책까지 일체 안 읽게 된 경우도..

네줄 冊 2019.02.01

나는 나다 - 정민

한시는 잘 안 읽다가 요즘 들어 자주 손에 잡는다. 분명 우리 조상이 쓴 시인데도 중국 문자로 썼다는 이유 때문에 기피했는데 그보다 한문 실력이 형편 없기에 누군가 번역해주지 않으면 제대로 맛을 못 느낀 탓이 클 것이다. 예전에 어려운 한자를 해독하기 위해 자전 펴놓고 한 줄씩 읽던 시절도 있었건만 세월은 이렇게 게으름만 쌓이게 했다. 이 책은 제목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제목에 낚였다가 함럄 미달의 허술한 내용을 알고는 도로 내려 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제목으로 배신은 하지 않았다. 저자의 빼어난 해석 능력과 현대적인 한글로 잘 번역을 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단점이라면 대부분의 인물들이 다른 책에서 많이 다룬 문장가들이라는 거다. 허균, 이용휴, 성대중, 이언진, 이덕무, 박제가, 이..

네줄 冊 2019.01.26

우리말의 탄생 - 최경봉

며칠 전에 영화 말모이를 보고 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요즘 영어에 우리 말이 심하게 오염되고 있다. 아무리 언어란 게 생물과 같아서 시대와 함께 변한다고는 하지만 우리 말을 이렇게 홀대하다가는 조만간 영어 발음을 표기하는 표시 문자로 전락할 것이다. 이런 시대에 이 책은 참 소중하다. 프랑스와 중국이 자기 말이 영어에 오염되는 것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프랑스와 중국이 문화대국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언어란 그 나라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우리 말이 미처 체계화 되지 않았던 일제 강점기 때 우리말 사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술했다. 이런 책이 다소 지루할 수 있는데 저자의 글솜씨 덕에 아주 흥미롭게 읽힌다. 내가 한국인이고 우리 말이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게 ..

네줄 冊 2019.01.22

정의로운 건설을 말하다 - 신영철

갈수록 정의라는 단어가 헐값에 오르내린다. 검찰도, 경찰도, 기자도, 정치인도 늘 앞자리에 정의를 내세우지만 그들이 진짜 정의로운지 의심스럽다. 아니 되레 정의롭지 못한 집단이 그들이다. 정의롭지 못하면서 정의로운 채 치장한다고 하는 게 맞겠다. 진짜 노조가 필요한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사각 지대에 놓여 있듯이 건설 분야도 노동자들이 가장 열악한 상태다. 이 책은 그 원인과 해결점을 말하고 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저자 신영철의 낮은 곳을 향한 마음이다. 검찰이나 기자 등 방귀깨나 뀌는 위치에 놓인 사람들은 특별히 법의 보호가 필요치 않지만 설사 조금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방어를 하거나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지들끼리 똘똘 뭉친 동업자 정신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거니와 한국에..

네줄 冊 2019.01.19

흰 그늘 속 검은 잠 - 조유리 시집

어릴 때 유난히 굿을 자주 하는 친구네가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집과는 달리 친구네는 그런대로 잘 사는 마당이 넓은 집이었다. 우리집과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그 집에서는 가끔 굿이 열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예닐곱 살 무렵일까. 친구집 안방에서 무당이 징을 치면서 구슬프게 주문을 외던 기억이 있다. 그 징소리를 들으며 나는 친구와 골목에서 구술치기를 했다. 그 때 우리는 이 놀이를 다마치기라 불렀다.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늘 할머니나 어머니가 머리에 흰 수건을 동여 매고 누워 있었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누워 있고 어느 날은 어머니가 누워 있엇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며 신병이라고 수군댔다. 그 때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친구 어머니가 무당이 될 팔자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

네줄 冊 2019.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