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소와 훍 - 신나미 교스케

마루안 2019. 4. 16. 21:39

 

 

 

며칠 전에 일본이 WTO에 제소한 후쿠시마 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에 대한 소송에서 한국이 승소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나도 탈원전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작년부터 읽으려고 찜해둔 이 책을 이번 기회에 읽었다.

이 책은 일본의 르포 작가인 <신나미 교스케>가 직접 후쿠시마 원전 오염 지역을 답사해서 쓴 책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덮치면서 일어났고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와 함께 최악의 원전사고였다.

당연 원전에서 반경 20킬로까지의 지역이 출입제한 구역으로 지정된다. 좀더 먼 지역을 포함해 귀환 곤란 구역, 거주 제한 구역 등 몇 개의 등급으로 제한 구역을 나누는데 저자는 당국의 출입 허가를 받아 그런 지역을 출입할 수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에 그 지역은 쑥대밭이 되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도 서둘러 피난을 갔고 이 책은 그곳에서 농사와 가축을 기르며 살았던 사람들의 원전 사고 이후의 이야기다. 제목이 소와 흙인 이유는 사고 후 소들의 행적을 쫓은 르포이기 때문이다.

원전 피해 지역의 가축은 전부 살처분 지시가 내려졌다. 많은 소가 살처분 되어 묻혔으나 살처분에 동의하지 않은 농부도 있었다. 소를 매어둔 채 달아난 농부도 있었고 풀어주고 달아난 농부도 있었다. 고삐를 풀지 못한 소는 속절 없이 우사에서 굶어 죽었다.

농부 와타나베 씨는 살처분에 동의하지 않고 소들을 몽땅 풀어주고 피신을 했다. 그러나 자신이 얼마전에 힘들게 받아냈던 쌍둥이 송아지가 눈에 밟혔다. 농부는 소들이 궁금했다. 출입이 통제된 지역은 당국의 허가를 받아도 여러 개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오랜 기간이 지났으나 자신을 버리고 떠난 주인을 멀리서 알아보고 다가오는 쌍둥이 소를 보자 농부는 소들에게 사료를 공급한다. 방사능 오염 지역에도 여름엔 풀이 자란다. 살아 남은 소들이 여름엔 풀을 뜯으며 생존했으나 겨울이 문제였다.

농부는 건초와 사료를 공급하며 소들을 보살폈다. 방사능에 오염된 흙에서 자란 풀을 먹고도 소들은 생명을 유지했다. 육우로 길러져서 30개월쯤 도살 되어 생명을 마치던 소에게는 오히려 다행이다. 쌍둥이 소는 도살장으로 향하는 대신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땅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돌보지 않아 야생화된 가축들 개 고양이는 도망가지만 소들은 무심히 풀을 뜯다 낯선 방문객을 쳐다볼 뿐이다. 버림 받은 동물에게는 경게 구역도 계획적 피난구역도 없다. 방사능 수치는 그들에게 의미가 없다. 사고 전이나 후나 상관 없이 그냥 살아간다.

당연 고기에서 측정된 방사능 수치는 먹을 수 없는 고기다. 폐허가 된 마을은 출입금지 구역이지만 봄이면 벚꽃이 피고 여름이면 접시꽃이,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핀다. 마을 감나무에 주체할 수 없이 매달인 홍시를 보면서 저자는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다.

오염 지역에 사람이 살지 않은 집집마다 꽃이 피어 있는 풍경을 저자는 잊지 못한다. 무성한 잡초에도 불구하고 주렁주렁 매달린 능소화가 유난히 아름답게 보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몇 년이 지났지만 그 지역은 여전히 출입을 통제하고 지금 피해 지역의 소들은 모두 살처분 되고 없다.

원자로가 있는 곳은 영원히 출입이 금지될 거고 주변 지역 또한 최소 백 년은 아니 그보다 긴 시간 사람이 살지 못한다. 자연은 위대한 것이어서 조금씩 토양이 회복할 것이나 그 지역의 생산물을 먹기에는 꺼림칙하다. 수치가 허용량을 밑돈다 해도 그렇다.

원전 사고가 초래한 재앙은 그 지역뿐 아니라 사회 곳곳 눈에 보이지 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기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지만 원전은 청청 에너지가 아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원전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더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