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 박서영 시집

마루안 2019. 5. 28. 22:12

 

 

 

이 시집을 읽고 박서영 시인을 알았다. 내가 시를 전문적으로 읽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동안 문예지에 발표하는 시라도 읽었을 법한데 박서영의 시를 읽을 기회가 없었다. 뒤늦게 인연이 닿은 그녀의 시를 꼼꼼히 읽어볼 요랑이다.

나는 유독 유고 시집에 집착한다. 유고 시집을 달고 나온 시집은 가능한 읽는 편인데 이 시집은 제목부터 유독 눈길을 끌었다. 시인을 검색하자 다른 유고 시집이 또 있다. 작년 초에 세상을 떠난 시인의 1주기에 맞춰 올해 두 권의 유고 시집이 나온 것이다.

일단 두 권 다 읽었다. 하나는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출판사에 시집 의뢰를 한 것이고 이 책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 유족과 지인들에 의해 나온 1주기 시집이다. 족발집처럼 원조 따지자는 것은 아니나 엄연히 말하면 이 책이 진짜 유고 시집이다.

문학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마음을 움직이는 시도 이 시집에 실린 시가 더 많다. 처음 접하는 시인이지만 시가 참 좋았다. 몰랐던 시인을 만난 것도 설레는데 시까지 울림을 주니 더욱 기쁘다. 조금씩 음미하면서 읽을 수 있는 이런 시에 나는 마음이 간다.

거기다 문학평론가 김경복의 해설은 박서영 시인을 이해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 그것이 발문이든 주례사 비평이든 간에 누가 해설을 하느냐에 따라 시집을 읽는 태도가 달라진다. <멀고도 높은 꿈, 그 슬프고도 무서운 계시>라는 해설 제목도 아주 적절하다.

가끔 시집 말미에 실린 해설을 읽을 때면 과연 그 사람이 시인의 시를 꼼꼼하게 읽고 쓴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시와 해설이 따로 노는 글도 있었다. 박서영 시인의 시를 이 기회로 마음에 담을 수 있었지만 김경복 교수의 글도 인상 깊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자신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쓴 시들인데도 무척 담담하다. 나도 예전에 가까운 사람이 시한부 생을 보내면서 담백하게 지난 날을 돌아보는 것을 봤기에 시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딱 50년을 살다 떠난 시인의 마음은 어땠을까.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 등, 시를 읽으면서 줄곧 유고 시집임을 염두에 두게 만들었다. 선입견인지는 모르겠으나 죽음을 예감한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죽음임을 인정하고 수긍함을 절절히 느낀다.

몇 편의 시는 시인이 미처 제목을 붙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맨 마지막 구절을 제목으로 정했다. 그 중에 <아, 자정 조금 넘어가는 이런 밤에>, <검고 파란 시간의 죽음 곁에서> 등은 마음을 비운 삶의 담백함이 온전히 담겨 긴 여운을 남긴다.

가슴 한 켠이 서늘하지만 꼭 슬프지만은 않다. 새가 날기 위해서 뼈를 대나무처럼 속을 비우고 몸무게를 줄인다고 하지 않던가. 누구의 인생인들 떠날 때 회한이 없겠는가. 시를 읽으면서 남은 생을 비우면서 더욱 가볍게 살기로 다짐한다. 나는 아직 비울 것도 배울 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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