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 김언

마루안 2019. 6. 12. 22:01

 

 

 

어디서 그런 집중력이 생겼는지 아주 진지한 마음으로 읽은 책이다. 시인한테는 미안한데 김언은 시보다 비평글이 더 좋다. 그의 비평글은 묘하게 읽는 이를 집중하게 만든다. 문장에 공감하며 거기에 빨려들게 만드는 재주는 전적으로 글쓴이에게 달렸다.

아주 시적인 제목이 붙은 이 책은 시론집이라고 하지만 어렵지 않게 읽힌다. 많은 평론가들이 온갖 문학 이론과 고상한 문장을 동원해 독자를 주눅 들게 만드는데 이 책은 쉽게 이해가 된다. 시에 관한 시인의 생각을 따라가다보니 어느덧 마지막 장이다.

근래에 이렇게 집중해서 읽은 책이 있었던가. 모처럼 책다운 책 읽은 기분이다. 혀를 뽑아 삼킬 듯이 숨막히는 키스와 함께 허벅지가 뻐근하도록 격렬한 섹스를 하고 나면 며칠 섹스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있는데 이 책이 딱 그렇다.

시집이야 늘 옆에 두고 있지만 다른 문학 책은 당분간 읽지 않아도 허기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의 글에는 시에 대한 진지함과 삶의 진정성이 함께 느껴진다. 글이 저자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겠지만 문장에서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김언 시인은 공대를 다니다 문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다른 책에서도 읽은 것 같은데 문학 하는 친구가 추천한 황지우 시집을 읽고 문학을 공부한다. 어쩌면 원래 가야할 길이 문학인데 공대로 잘못 들었다가 뒤늦게 제 길을 찾은 거라고도 할 수 있다.

비교적 부지런한 시인이다. 꾸준히 시를 발표하여 여섯 권의 시집을 냈다. 이 책에서 윤동주와 서정주의 자화상을 두고 나름의 비교와 서정주 시인의 생애를 언급했는데 아주 공감이 간다. 나도 한때 서정주의 시에 탄복했고 그의 자화상을 좋은 시라 생각한다.

그렇더라도 시인이란 작품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 어느 인생인들 만인에게 박수를 받을 것인가. 논란의 여지는 박정희 대톨령에게도 이문열과 김지하에게도 있다. 나는 그들 셋 다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오래 살면 오물이 묻기 쉽다. 서정주가 윤동주처럼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났다면 흠집이 좀 덜 났을 것이다. 문학적으로 봐도 그의 인생 후반기에 완성도가 떨어졌기에 더욱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좋은 작품을 접하면 작가의 생애까지 가슴에 담는다. 미당 선생의 시가 아무리 좋아도 내 가슴에 담을 수 없는 이유다.

이 책을 좋게 읽었다고 김언 시인의 시를 다시 찾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가시가 많아선지 아니면 너무 미끄러워서인지 모르지만 그의 시와 친해지지 않는다. 다만 이 책으로 인해 시인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의 호기심은 과연 어디까지 갈까.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사는 것이 고맙고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