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마루안 2019. 5. 30. 22:55

 

 

 

지난 연말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책인데 여태 한쪽에 밀쳐두었다가 이제야 읽었다. 진즉에 읽으려고 신간 목록에 올라 있는 책이긴 했으나 순위에서 밀린 책이다. 나는 희한하게 광고가 요란하고 저자가 여러 매체에 나와 설치는 책은 되레 멀리하고 싶다.

그래서 서점 앞자리에 줄줄이 진열된 베스트셀러 잘 안 읽고 그 많은 천만 영화도 극장에서 본 것은 변호인 빼고는 없다. 안 봐도 그리 아쉽지 않고 언제 기회가 있겠지 뭐 이런 생각으로 지나친다. 그러다 영영 만나지 못한 작품이 많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책에 큰 만족을 못 느낀 것도 그런 이유다. 가능한 숨어 있는 책을 읽으려는 생각, 좋은 저자를 발견한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영화도 저예산 영화가 좋다. 출판사도 책을 선택하는데 중요하다. 한겨레출판은 좋은 책을 많이 낸다.

이 책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산문집이다. 기존에 여기저기 발표한 글을 묶은 것이어서 따끈따끈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세상을 사랑하는 저자의 따뜻한 심성을 느낄 수 있다. 제목부터 무척 감성적인데 언급한 여러 작품의 단상에서 슬픔을 감지할 수 있다.

슬픔이란 바닥을 뒹굴거나 땅바닥을 치며 통곡하는 데서만 표현되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런 요란한 슬픔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견디면서 안으로 삭히는 슬픔이야말로 진짜 아픈 슬픔이다.

누군들 가슴 속에 상처 한두 개 없는 사람이 있으랴. 이 책에서 말하는 슬픔이란 내 슬픔보다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게 만든다. 같은 고통도 내 고통이 더 심하고 슬픔도 내 슬픔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슬픔이 내 것에 가까워질 때 슬픔은 아름답다.

이 양반의 문장은 작품 속에 온전히 빠졌다가 나와서 쓴 글이다. 직업적인 글쓰기가 아닌 팔자가 아닐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읽고 좋아서 쓴 글임을 느낀다. 쉽게 쓴 글이라는 것은 아니다. 가슴에서 우러나온 글이라는 말이 맞겠다.

독자는 저자의 진정성 있는 문장에서 감동을 받는다. 학연 지연 등 여러 끈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저자의 글에서 그 사람이 바라보는 삶의 방향과 정체성을 감지한다. 문학을 진단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글에는 글쓴이와 읽는이의 공감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저자인 신형철과는 코드가 맞았다. 독서에서 편식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를 아우르는 공허한 글까지 읽을 생각은 없다. 읽을 책은 많고 시간은 없는 마당에 좋은 책 골라 읽기에도 바쁘다. 좋은 글 읽은 뒤끝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