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뭔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4번 출구 - 서광일 시집

마루안 2019. 7. 18. 22:12

 

 

 

더운 날일수록 시집을 더 손에 잡게 된다. 누가 그랬던가. 독서의 계절은 가을이라고,, 책 읽는 계절이 따로 있을 리 없지만 내겐 여름이 책 읽는 계절이다. 꽃 피는 봄과 하늘 높은 가을엔 올해가 마지막일 것처럼 들로 산으로 쏘다니기 바쁘니 더욱 그렇다.

파란 출판사의 시집을 유심히 본다. 정확하게는 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으로 이름이 길다. 신생 출판사인데 몇 개의 시집은 나와 코드가 맞아서 놓치면 아까울 정도다. 요즘 새로 생긴 여러 출판사에서 시집을 많이 낸다. 잘만 고르면 좋은 시집을 만날 수 있다.

드디어 까다로운 내 취향을 비껴가지 못한 시집을 만났다. <뭔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4번 출구>라는 독특한 제목을 가진 시집이다. 보라색 표지에 담긴 시들이 하나도 그냥 넘길 수 없을 정도로 밀도 있게 마음에 와 닿는다.

흔히 보라색이 귀족(왕족)을 상징하지만 이 시집에는 다양한 밑바닥 인생들이 나온다. 다소 어둡고 때론 심란하기도 하지만 비유와 은유를 하나씩 벗기면서 싯구를 음미하다보면 이런 삶이 더 거룩하고 아름답다는 걸 깨닫게 된다.

흔히 철마다 변하는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거나 비판이든 찬양이든 거룩한 노동을 담은 시가 많다. 아름다운 자연도 거룩한 노동도 시인에게는 비켜갈 수 없는 소재이지만 서광일 시인의 시선은 외국인 노동자나 서민촌 연립주택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다.

사람 냄새, 땀 냄새, 그리고 고단한 인생을 견뎌야 하는 한숨 소리 등이 가득하지만 궁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세상을 향한 시인의 시선이 따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생이 즐겁기로서니 오로지 틈만 나면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팝콘 먹으면서 코믹 영화를 볼 때만 인생이 즐겁던가. 때론 삼류극장에서 신파 영화를 보면서 실컷 울고 나서 더욱 살고 싶은 사람도 있다. 나는 결혼식장보다 장레식장에서 더욱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서광일 시인은 1994년에 등단했으나 시집은 이것이 첫 번째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연극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시 곳곳에서 연극 무대처럼 펼쳐치는 삶의 고단함이 묻어 난다. 그런데도 묘하게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문학평론가 정은경의 적절한 해설도 시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무슨 관행처럼 으레히 시집 뒤편에는 발문이든 주례사 비평이든 해설이 붙는데 뭔 소리인지를 모르게 하는 글도 있다. 시집도 누가 해설 하느냐에 따라 격이 달라진다.

누가 그랬던가. 꽃은 오래 봐야 예쁘다고,, 꽃만 오래 보면 예쁜 것이 아니다. 詩도 여러 번 읽으면 예쁘게 가슴에 닿는다. 나는 이 시집을 서너 번 반복해서 읽었다. 좋은 시집이란 이런 것이다. 벌써 이 시인의 다음 시집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