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눈 한번 감았다 뜰까 - 조항록 시집

마루안 2019. 6. 28. 19:46

 

 

 

줄곧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던 시집이다. 며칠 다녀온 여행길에 동행했던 시집이기도 하다. 여행길 배낭은 가능한 짐을 줄여야 하기에 두꺼운 책은 부담스럽다. 시집이 우선인데 그 조건은 단 한 가지, 여러 번 읽어도 단물이 빠지지 않는 시다.

딱 한 권 넣어 가는데 당연하다. 시는 반복해서 읽어야 가슴에 온전히 박히지만 어디 그런 시가 흔하던가. 세상엔 시인도 시집도 많고 많지만 좋은 시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시집 한 권에 뱐복해서 읽을 만한 시가 많이 실린 경우는 더욱 드물다.

까맣게 잊고 있던 사람의 시집을 뱔견할 때가 있고 곧 시집이 나올 것으로 마음에 둔 시인도 있다. 조항록 시인이 그렇다. 학수고대는 아니어도 조만간 시집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예감하고 있었다. 이런 시집을 만나면 읽기도 전에 설렘이 앞선다.

내가 출판 동향을 꼬박꼬박 챙길만큼 한가하지가 않아 좋은 시집은 천상 서점 나들이를 해서 발견한다. 그러고 보면 빠르고 간편한 스마트 시대에 이런 원시적인 책 고르기 때문에 내가 만나지 못하고 묻힌 시집들이 많을 것이다.

각종 문학지에서 주구장창 홍보를 하는 시집 발간 소식은 참고만 할 뿐 믿지 않는다. 내가 유명 시인, 유명 출판사에 별로 신경을 안 쓰니 숨어 있는 시집 발견은 더욱 어렵다. 그래도 좋은 시집은 언젠가 발견되기 마련, 이 시집이 그렇다.

서점에서도 메이저 출판사야 진열에서부터 우위에 있으니 눈에 띄기 쉽지만 중소 출판사는 그마저 쉽지 않다. 평론가나 미디어가 띄워주지 않아도 발견 되는 도서가 몇이나 될까. 쏟아져 나오는 시집 더미 속에서 보석 같은 시집을 발견한 기쁨이 크다.

이번 시집엔 산문시가 많아졌다. 산문시가 내용은 심오해도 안구 정화에는 미진하기 마련인데 조항록의 시는 운율이 낯설지 않아 술술 읽힌다. 눈으로 읽고 혀로 음미하며 가슴을 적시는 삼박자가 잘 맞는다. 고매하신 평론가들은 이맛을 모른다.

젊은 시인 박성준이 해설을 했다. <멀쩡해지기 위한 응달의 기술>이라는 제목 또한 해설로는 적절하다. BTS도 좋아하고 이미자도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그 폭넓은 감성에 탄복한다. BTS 노래에 적응 못하는 내가 이런 평론은 꼼꼼하게 읽으며 감동한다.

몇 군데 낯선 해석(?)에 공감 안 하는 것 빼고 그런대로 동의한다. 이것은 평론가의 문제가 아니라 시 읽기에 서툰 내 탓이다. 나는 이해 안 되는 시를 억지로 읽을 생각도 없지만 어려운 평론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무식이 탄로나도 어쩔 수 없다.

문학수첩에서 소리 없이 좋은 시집을 내고 있다. 내 편식 때문에 모든 시집을 내것으로 만들지는 못하나 출판사의 꾸준함에 박수를 보낸다. 상투적인 패러디지만 꽃보다 시집은 한물 갔다. 밥보다 시집이라 한다면 지나친 찬사인가. 좋은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