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작별 일기 - 최현숙

구술생애사 최현숙의 책이다. 아니 작가라고 해도 되겠다. 구술생애사라는 직업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기도 하다. 남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것을 책이나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알리는 직업이다. 그의 바탕은 어떤 차별도 없는 세상이다. 이 책은 최현숙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다. 여든 여섯의 어머니가 치매를 앓다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기록한 일기를 바탕으로 했다. 진작에 그의 책을 몇 권 흥미롭게 읽었기에 애초에 이 기록은 책으로 낼 작정으로 쓴 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글도 흡인력 있게 아주 잘 쓴다.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여러 군데다. 거기다 솔직한 표현이 맘에 든다. 자기 엄마 얘기를 꾸미거나 과장이 없다. 되레 숨기고 싶은 집안 사정과 일찍부터 생긴 반항심으로 아버지와의 갈등 노출이 감동을 준다. 잘 ..

네줄 冊 2020.03.07

배를 돌려라 - 하승수

요즘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가능하면 밖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집에 일찍 들어온다. 덕분에 책 읽을 시간이 많아졌다. 서점에 가서 그동안 목록에 올려 놨던 책들을 꼼꼼히 살핀 끝에 고른 명 권의 책 중에 이 책이 포함된다. 이 책을 만든 출판사 는 대구에 있는 출판사로 좋은 책을 꾸준히 내고 있는 괜찮은 출판사다. 책 만드는 사람들도 돈을 벌어야 먹고 살 텐데 이곳은 유행 타는 책을 잘 만들지 않는다. 얍삽하고 그럴 듯한 제목을 붙인 부동산 재테크나 자기개발서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또 무슨 출판사가 그리도 많은지 종이책이 안 팔리는 출판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게다가 저자의 정체성이 의심스럽고 수준 미달의 문장으로 가득한 책도 부지기수다. 시쳇말로 개나 소나 책 만드는 세상이다. 아마 ..

네줄 冊 2020.03.01

아파서 살았다 - 오창희

싱그런 여름 햇살처럼 빛이 나던 21 살 여대생에게 류머티즘이라는 병마가 찾아왔다. 이 책 는 1958년 생인 저자가 40년 간 이 병과 함께한 이야기다. 절망 속에서도 언젠가는 좋아질 거라는 희망 속에 살아온 세월이 소설처럼 펼쳐진다. 누구의 인생인들 평탄하기만 했겠는가마는 이 분의 인생은 유독 파란만장하다. 등단한 작가가 아님에도 글을 아주 흡인력 있게 잘 쓴다. 아마 국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인가 보다. 갑자기 찾아온 병마와 싸움면서 그녀는 다니던 대학을 졸업했다.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어느 정도 경제력이 받쳐준 집이었기에 이 정도의 치료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 가족처럼 만약 반지하 방에서 어렵게 사는 집안이었다면 그 치료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내 경우였으면 속절 없이 죽었다...

네줄 冊 2020.02.17

나쁜 기자들의 위키피디아 - 강병철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가인 앤드류 킨(Andrew Keen)이 쓴 책 이 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책을 좋아하는 독자와 소통하고 여러 분야의 작가와 교류의 장이 되었던 서점 대신 지금은 소수의 독재적인 거대 온라인 서점이 출판계 동향을 좌우한다고 했다. 독점적 온라인 서점은 독자의 구매 이력이나 인기 작품에 대한 통계정보를 사용해서 독자의 구매력을 유도하기에 인간미가 결여된 세상이 되었다고 했다. 영화가 이미 배급에서 좌우되듯 도서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앤드류 킨은 민주주의라는 보호 속에서 구글, 유튜브, 위키피디아는 거짓과 왜곡, 폭력과 절도가 난무하는 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웹 2.0 세상을 선도하고 동시에 기존 미디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뉴미디어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지식보다 정보가..

네줄 冊 2020.02.02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 이은규 시집

이은규 시인이 드디어 두 번째 시집을 냈다. 내가 '드디어'라고 한 이유는 이 시인의 다음 시집을 눈꼽아 기다렸기 때문이다. 첫 시집을 2012년에 냈으니 오랜 만에 나온 것은 분명하다. 이라는 시집 제목으로 아주 딱 어울리는 시집은 오랜 시간 내 옆에 있던 책이다. 제목에 꽂혀서 샀던 시집이었으나 읽으면서 그의 시에 제대로 중독이 되었다. 처음엔 남성 시인으로 알았다. 첫 시집, 첫 시를 읽으면서 이 사람 참 시를 잘 쓰는 시인이구나 했다. 애초에 평론가들이나 문예지에서 언급하는 시집평을 믿지 않으니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지금도 나는 신문에 나오는 도서평이나 명사들이 권하는 읽을 만한 책 등을 믿지 않는다. 지금껏 그들이 권한 책 중에서 크게 공감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서평이나 새책 소식은..

네줄 冊 2020.01.16

까대기 - 이종철 만화

나는 택배를 일주일에 보통 한두 번씩 이용을 한다. 어쩔 때는 서너 번 이용할 때도 있다. 예전에 다음 날 배송된다는 물건을 주문하고 기다린 적이 있다. 배송 조회로는 오전부터 배송 출발, 오늘 중 배송 예정이라고 뜨는데 늦게까지 오지를 않았다. 수요일 저녁 주문, 목요일 배송, 금요일 도착, 보통 내가 택배를 이용하는 날이다. 배송 물량이 많아서겠지 했는데 토요일 오전에도 오지를 않았다. 할 수 없이 전화를 했다. 새로 들어온 택배 기사가 이 지역을 맡았는데 지리에 서툴러 배송이 지연되고 있단다. 급하게 받아야 할 물건이라 전화 했다고 하니 죄송하다면서 오후에는 받을 수 있를 거라고 했다. 그날 끝내 받지를 못했는데 일요일 아침에 문앞에 택배가 놓여 있었다. 배송 조회를 하니 토요일 밤 10시 경에 배..

네줄 冊 2020.01.12

환멸의 밤과 인간의 새벽 - 안숭범

가격이 2만 원을 넘어가는 책은 사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하고 있다. 그것도 얼마 전까지 1만 5천 원이었는데 높여 잡은 가격이다. 고물가 시대에 책 만드는 사람은 흙 파먹고 사느냐고 힐난하는 사람도 있겠다. 어쨌든 1만 원에 살 수 있는 시집 빼고는 책값이 항상 부담스럽다. 경제적 사정이 가장 크다. 며칠 전 책방에서 책을 고르고 고르다 금액에 맞춰 딱 두 권만 들고 계산대에 간 적이 있다. 어떤 스님이 앞서 계산을 하고 있다. 뒤에서 보니 열 권이 넘는다. 20 만 원이 넘는 책값을 카드로 척 계산하는 스님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나는 책 많이 읽는 사람보다 책 많이 사는 사람을 더 부러워한다. 저 분은 나처럼 죽어라 일하는 대신 염불만 하는데도 저렇게 책을 많이 살 수 있다니 공연히 질투가 났다..

네줄 冊 2020.01.08

차차차 꽃잎들 - 김말화 시집

애지에서 나온 시집은 꼭 살펴 보는 편이다. 첫 시집을 내는 시인은 더욱 유심히 들여다 보게 된다. 이 시집은 김말화의 첫 시집이다. 누구든 그러겠지만 시인에게 첫 시집은 각별하다. 독자인 나도 가능하면 그냥 지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시인이 심혈을 기울여 생산했어도 공감이 안 가면 말짱 도루묵이다. 안타깝지만 몇 편 읽다 그냥 덮는 시집이 많다. 한가하게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반복해서 읽어보는 인내심이 내게는 없다. 매정하게 지나간다. 가끔 비평을 하는 평론가들은 얼마나 고역일까 생각들 때가 있다. 싫은 사람과 악수해야 하는 정치인처럼 억지로 읽어야 하는 책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독자는 참 편리하다. 맘에 없는 책 외면하기는 라디오 채널 돌릴 만큼 쉽다. 나와 코드가 맞는 시인이..

네줄 冊 2020.01.03

어찌 상스러운 글을 쓰려 하십니까 - 정재흠

책 제목이 다소 선정적이다. 요즘 하도 제목 가지고 독자를 현혹하는 책이 많아서 그런 종류의 책이겠거니 했다. 인터넷 뉴스 또한 제목으로 클릭하게 만들어야 하기에 제목 장사에 혈안이 되어 있다. 어리숙하면 그런 뉴스에 당한다. 책도 제목 보고 골랐다가 낭패 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서점 가지 않고 주문하면 그럴 듯한 제목이나 광고에 낚이기 십상이다. 내가 믿을 만한 작가 아니면 서점에서 책을 직접 들춰 보고서야 까다롭게 선택하는 이유다. 이 책의 제목은 한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사대부들이 임금에게 올린 상소에 나오는 글이다. 그동안 대대손손 중국 역사를 배우고 중국을 받들면서 잘 살아 왔는데 어떻게 조상의 문자를 버리고 상스런 한글을 만드냐는 항의다. 지금과도 비슷하다. 말로는 주권자를 받들고 민중을..

네줄 冊 2019.12.31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 이우근 시집

지난 달 늦가을의 햇살을 따라 대구를 여행할 때 만난 시집이다. 내가 시집을 접하는 통로는 각종 문예지에 실린 광고나 신문 주말판에 나오는 신간소식에서다. 문예지에 나오는 광고나 평론가들 추천은 믿지 않으니 나에게는 전혀 약발이 없는 통로다. 그저 호기심 가는 시집이 있으면 제목을 적어 놨다가 나중 서점에서 직접 보고 결정을 한다. 많은 시집을 읽기보다 좋은 시집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이따금 목록에 없는 시집이 서점에 있을 때가 있다. 뜻밖에 좋은 시집을 만나면 횡재하는 기분이다. 이우근 시집은 전혀 정보가 없었다. 2박 3일 대구 여행 끝, 동대구역에 세련된 헌책방이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가듯 보이면 들어간다. 집에서 가져간 시집은 오며 가며 기찻간에서 숙소에서 다 읽었고 읽을거리 하나 있었..

네줄 冊 2019.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