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골목 도쿄 - 공태희

마루안 2019. 7. 3. 22:28

 

 

도쿄를 두 번밖에 가보지 못한 내가 단번에 사랑하게 된 책이다. 명소를 돌아보는 여행이 아닌 뒷골목 탐방에 훨씬 관심이 많은 나로써는 딱 구미가 당기는 내용이다. 도쿄 뿐인가. 런던, 더블린, 빠리, 리스본도 관광 명소보다 뒷골목이 내겐 더 매력적이었다.

원래 걷기를 좋아하지만 작년 가을부터 걷기 여행에 한참 빠져 있다. 언제나 여행을 꿈꾸지만 훌쩍 떠날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줄어든다. 대신 이런 책으로 대리 만족을 하는 일이 늘었다. 서점에서 도쿄 골목이라는 제목에 꽂혀 저자 약력부터 봤다.

나를 닮은 사람의 책일수록 공감가는 내용이 많다. B급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B급 영화와 음악을 좋아한다는 프로필이 마음에 들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여행을 하는 나에 비해 저자의 여행이 다소 요란해 보이기는 해도 책을 선택하는 데 별 문제 없다.

이 책을 쓴 공태희는 음악 프로를 만드는 프로듀서다. 여행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가방을 싼다. 특히 일본은 200번 넘게 갔다고 하니 여행이라기보다 주말마다 직장에 출근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이런 사람의 도쿄 뒷골목 탐방이라니 읽기 전에 침이 고였다.

특히 신주쿠에 있는 가부기초 뒷골목과 신바시에서 유락초 사이의 고가철로 골목은 너무나 생생하게 읽힌다. 내가 두 번째 갔던 도쿄 5박 6일 여행에서 인상 깊은 골목이다. 그곳이 화려한 주연 골목에서 비껴나 빛이 바랜 조연 골목이기 때문이다.

조연이면서 품위를 잃지 않은 골목이랄까. 내가 본 이곳은 그랬다. 보슬비 내리는 3월의 가부기초 골목에서 허리띠 풀린 바지를 입고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중년의 쓸쓸함을 봤다. 누구에게 맞았는지 입술 한쪽에 핏물이 보였고 혼잣말로 계속 중얼거렸다.

일본어를 모르지만 그 욕이 자신을 향한 탄식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가부기초의 허름한 술집에서 마신 술맛은 씁쓸하면서 좋았다. 술이 왜 쓴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그럼에도 도쿄의 낯선 골목이 왠지 오래전에 왔던 곳처럼 생각되었다.

이 책은 도쿄의 오래된 뒷골목을 탐사하며 숨어 있는 맛집을 친절하게 소개한다. 어느 날 갑자기 뜨거워진 장소가 아니라 조금씩 낡아가면서 새로움을 생산하는 공간이다. 화려하고 비싼 음식보다 허름하지만 싸고 맛있는 가장 일본적인 음식을 만날 수 있다.

이런 골목을 볼 때면 골목이 사라진 서울의 삭막함이 아쉽다. 뭐든지 새것만 쫓는 세태라고 하지만 삶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골목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다시 도쿄에 가면 허름한 골목을 걸으며 도쿄의 냄새를 맡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