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이름 이후의 사람 - 전형철 시집

전형철 시인이 두 번째 시집을 냈다. 2007년에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후 13년 만에 겨우 두 권의 시집을 낸 셈이다. 작품 발표가 무척 더딘 편이다. 허나 등단만 하고 사라지는 시인들이 부지기수인 시단에서 그래도 이 시인은 다행스런 편이다. 시인의 첫 시집인 를 읽으면서 한동안 이 시인에게 푹 빠졌다. 마음에 꽂히는 시집을 발견하면 해부하듯 반복해서 읽으며 파고 드는 편인데 이 시집이 그랬다. 눈으로 들어온 싯구가 가슴에 박혀 빠져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이 시인을 가슴에 담고 있었다. 두 번째 시집이 파란 출판사에서 나왔다. 희한하지. 신생 출판사에서 이렇게 좋은 시집이 연달아 나오고 인연이 닿는 것을 보면 일종의 행운이다. 이 시집도 단박에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여전히 슬픔이 배긴 싯구에서 ..

네줄 冊 2020.10.19

한정판 인생 - 이철경 시집

설레는 마음으로 시집을 읽었다. 이철경 시인은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지만 은 세 번째 시집이다. 한 시인의 정체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번째 시집은 읽어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믿는다. 비로소 이 시인을 가슴에 담는다. 한정판 인생이라는 너무나 인간적인 제목에 끌리기도 했지만 시집 내용이 아주 좋았다. 다독보다 정독, 정독보다 꼼독(깨알처럼 꼼꼼하게 읽는)을 우선하는 내 시집 읽기다. 누군가는 다양한 시를 읽어야지 시 보는 눈이 좁아진다고 충고할지 모른다. 그 충고 달게 받는다. 그러나 내 눈은 이미 좁다. 더 넓히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어디 가서 지식 자랑할 일도 없고 낯선 시를 힘들게 읽느니 차라리 시를 끊겠다. 시가 나를 위해 찾아 오길 기대하지 않는다. 틈틈히 내가 좋은 시를 찾아 나설..

네줄 冊 2020.10.17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 권혁란

흔히 죽기 딱 좋은 날이라는 문학적 표현을 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유명한 싯구도 있다. 아무리 상투적이라도 질리지 않는 문구임은 틀림없다. 이 책을 읽으면 가슴에 착 감기는 이 문구가 얼마나 소용 없는 문장인지를 알게 한다. 이 책은 작가 권혁란이 90세에 세상을 떠난 친정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한 이야기다. 원래 작가는 없는 얘기 지어내거나 경험한 일을 적더라도 각색을 한다. 그래서일까. 책에 실린 이야기가 순도 100% 실화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깔고 읽었다. 작가의 책이니 문장은 아주 술술 읽힌다. 작가의 어머니 김봉예 여사는 여섯 자식을 두었다. 작가는 김여사의 막내 딸이다. 자식 농사를 잘 지은 김봉예 여사는 당신이 원했던 것처럼 세상을 떠나지 못했다. 누구나 짧게 앓다가 깔끔하게 죽기를..

네줄 冊 2020.10.15

살아남은 그림들 - 조상인

코로나가 너무 많은 일상을 바꿔 놓는 바람에 전시장 가 본 지도 한참이다. 전시장뿐인가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공연장을 갔는데 무대 예술을 접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전염병이 금방 수그러들 것 같지 않아 당분간 그런 기대는 접는 게 좋겠다. 이 책은 미술 이야기다. 우리 근대사가 혼란과 비극의 연속이었듯이 예술가들 또한 같은 길을 걸었다. 일제 강점기에 근대 미술을 받아 들인 우리로써는 일본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해방 후에는 남북이 갈라지면서 예술 분야도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도 월북을 했으면 언급이 금지 되었다. 당연 오랜 기간 잊혀진 예술가였다. 시인들 중에도 아까운 사람이 많다. 정지용, 백석, 오장환, 임화 등 빼어난 시인들이 분단의 비극 속에서 창작을 멈추거나 오..

네줄 冊 2020.10.11

종말의 밥상 - 박중곤

책 제목과 함께 책 표지에 실린 그림이 너무 강렬하다. 종말이라는 말은 일부 열성 기독교인들이 철석 같이 여기는 믿음이기도 하다. 20년 전에 세기말이 다가올 무렵, 휴거라는 말이 회자되었다. 그들은 정말 곧 종말이 온다고 믿었다. 믿음이 약한 자는 구원 받지 못한다고 했다. 믿음은 자유이니 내가 뭐라 할 일은 아니다. 다만 종교의 자유가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책도 밥상의 종말을 말하면서 표지 그림은 바이러스가 담긴 숟가락를 보여주고 있다. 섬뜩하다. 인간 욕심의 후과다. 전대미문의 전염병인 코로나로 지구촌이 완전 황폐화 되면서 일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인류는 늘 전쟁과 질병을 이겨 내며 고난을 극복하고 생존했기에 이 난국도 언젠가는 진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환경..

네줄 冊 2020.10.10

보이저 1호에게 - 류성훈 시집

이 시집은 제목부터 진공청소기처럼 내 마음을 빨아 들였다. 보이저 1호, 예전에 칼 세이건의 책 창백한 푸른 점을 읽고부터 관심이 생겼다. 평소 과학 뉴스에 그리 흥미가 없어서 보이저 1호가 보내 오는 우주 소식을 주목하지 않았다.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너무나 문학적인 제목에 이끌려 천문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가 점처럼 생긴 것보다 명왕성 부근까지 날아갔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태양계에서 가장 먼 명왕성이라는 이름이 좋았다. 명왕성의 영어 이름 플루토(Pluto)가 저승의 신 하데스의 라틴어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데 365일이 걸리는데 명왕성의 공전 주기는 약 248년이란다. 한동안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으로 불리다 자격을 잃었다. 그러..

네줄 冊 2020.10.07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 - 김진호

정치와 종교 얘기는 꺼내기가 늘 조심스럽다. 내 주변에 기독교인이 많기에 더욱 그렇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가능한 종교나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다. 의견이 다르면 대립하다가 결국엔 말싸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종교인이 가장 편향된 생각을 갖고 있다. 사랑이나 자비를 베풀고 실천한다는 종교의 가르침과는 반대다. 특히 개신교가 그렇다. 어떤 신학대 교수가 종교 화합 차원에서 불교 행사에 참석해 덕담으로 한 말을 트집 잡아 이단으로 몰아 퇴진 시킨 일도 있다. 큰 틀에서 그 사람의 생각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목만 딱 뽑아서 문제 삼은 것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직장에서든 동호회 모임에서든 얼마든지 꼬투리 잡아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일상에서도 말꼬리 잡고 늘어질 때 얼마나 사..

네줄 冊 2020.09.27

아무튼, 딱따구리 - 박규리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모처럼 큰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이 책은 크기가 시집보다 작은 아담한 문고본이다. 반면에 내용물은 그 어떤 책보다 감동과 배움을 주었다. 흔히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는데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디자인 연구원이다. 저자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유학해 엄청 생소한 분야인 지속가능 디자인 전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도 케임브리지 대학 공대 산하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겪은 일을 이 책에 담았다. 책 내용은 환경오염을 막고 자연 친화적인 삶을 지향하자는 말이다. 딱따구리가 기준점을 잡아 준다. 사람 주변에 숲이 사라지면서 딱따구리를 보기 어렵다. 저자는 세 개의 주거 공간에서 딱따구리를 만난다. 그래서 강릉 딱따구리, 케임브리..

네줄 冊 2020.09.23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 이병률 시집

얼굴 보고 시인 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가장 시인처럼 생긴 사람이 몇 명 있다. 그중 하나가 이병률 시인이다. 청바지에 면티 한 장 달랑 걸쳤는데도 시인처럼 보이고 일상적인 대화 몇 마디에서 저 사람 시인일 거야 이런 느낌이 오는 사람 말이다. 예전에 그의 첫 시집 를 여러 번 읽으면서 굳어진 선입견이다. 두 번째 시집 도 꽤나 반복해서 읽었다. 아마도 두번 째 시집이 창비에서 나왔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세 번째 시집부터 그의 시와 잠시 멀어졌다. 이 사람도 드디어 문단에 줄 서기를 시작했구나. 이건 나의 일방적인 생각이다. 그의 시집을 빼 놓지 않고 달달 외우면서 읽었듯이 산문도 부터 빠짐없이 읽었다. 그중 여행 산문집 을 맨 앞에 놓는다. 그 안에는 각종 인연의 끈을 쫓아가듯 여행지마다 단편 영화 ..

네줄 冊 2020.09.20

폭우반점 - 조우연 시집

기대하지 않고 읽은 시집인데 대번에 빠져서 읽었다. 이라는 제목 또한 특이하다. 톡톡 튀는 문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흡인력이 있다. 처음 접하는 시인인데 이름처럼 정말 우연으로 읽었다. 이런 시인도 있었어? 서점 시집 코너에 가면 정말 모르는 시인이 많아서 눈이 바쁘다.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이름도 있고 동명이인의 시인이라 헷갈리는 시인도 있다. 같은 시인인 줄 알고 주문했는데 이름만 같고 엉뚱한 시집을 접할 때도 있다. 조우연 시인은 이 시집이 첫 시집이다. 어디서도 접해 보지 못한 개성 있는 시가 문장 속에 오래 머물게 한다. 달착지근하지 않아 다소 불편한 싯구이나 머물고 나면 힐링이 되는 문장이다. 구체적 생활 체험이나 구질구질한 인생으로 치부할 밑바닥 삶에서 자신 만의 방식으로 삶의 애환..

네줄 冊 2020.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