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 이병률 시집

마루안 2020. 9. 20. 18:53

 

 

 

얼굴 보고 시인 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가장 시인처럼 생긴 사람이 몇 명 있다. 그중 하나가 이병률 시인이다. 청바지에 면티 한 장 달랑 걸쳤는데도 시인처럼 보이고 일상적인 대화 몇 마디에서 저 사람 시인일 거야 이런 느낌이 오는 사람 말이다.

 

예전에 그의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를 여러 번 읽으면서 굳어진 선입견이다. 두 번째 시집 <바람의 사생활>도 꽤나 반복해서 읽었다. 아마도 두번 째 시집이 창비에서 나왔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세 번째 시집부터 그의 시와 잠시 멀어졌다.

 

이 사람도 드디어 문단에 줄 서기를 시작했구나. 이건 나의 일방적인 생각이다. 그의 시집을 빼 놓지 않고 달달 외우면서 읽었듯이 산문도 <끌림>부터 빠짐없이 읽었다. 그중 여행 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맨 앞에 놓는다.

 

그 안에는 각종 인연의 끈을 쫓아가듯 여행지마다 단편 영화 한 편씩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시인은 시를 잘 써야 하는 법, 독자들이 달달한 그의 산문에 중독 되어 있지만 나는 그의 시를 읽을 때 그가 제대로 보인다.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는 이병률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늘 청년 같던 그도 이제 중견 시인으로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내 삶을 누군가 대신 살아주는 것 같을 때가 있다>면서 내 삶을 누군가 대신 꺼내 쓰고 있다는 시를 이 시집의 설명서로 생각한다.

 

<인생은 나 스스로 살아가는 사막과/ 누가 대신 살아주는 남극/ 그 둘의 배합으로 버무려진다>. 사막과 남극이라는 이질적인 배합이 시인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시인은 자기 삶을 살면서 남의 삶을 문학으로 완성시키는 사람이다.

 

시인을 달리 예술가라 하겠는가. <얼굴>이라는 시에서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것을 예감한다. <어머니도 유전적으로 앉아 있지만 얼굴을 자세히 보면 / 누구나 그렇듯 얼굴만으로는 고아입니다>. 관상으로 점 치는 사람처럼 시인은 시로 점을 치는 셈이다.

 

그의 시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섯 권의 시집을 읽다가 중독 되어 버렸다. 그러고 보면 이병률은 천상 시인이다. 첫 시집부터 자기 색깔이 분명한 시인이기도 하다. 너무 달착지근한 시여서 약장수 시인이라 시기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이병률의 시집은 몇 안 되는 잘 팔리는 시집 중 하나다. 서점에도 사진집처럼 비닐에 씌여 진열된다. 들춰보기 전에 무조건 사라는 자신감이다. 그의 산문 또한 냈다 하면 여러 판을 바쁘게 찍어야 할 정도다. 나 아니어도 얼마든지 언급되기에 가능한 유명 시인은 다루지 않으려 했으나 이 시인은 피할 수가 없다. 

 

출판계가 불황이네, 시집이 팔리지 않네, 하지만 나는 코로나로 많은 것이 닫혀 버린 요즘이 출판계의 호기라고 본다. 전염병으로 바깥 출입을 자제한 틈을 책이 들어설 자리로 만드는 것이다. 숨어 있는 좋은 책은 약간의 햇빛에도 금방 드러난다. 책 읽기 좋은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