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 김대호 시집

공교롭게 이번 시집 후기도 출판사 에서 나온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여기서 좋은 시집이 연달아 나오는 걸 어쩌랴. 가능한 편식을 하지 않으려 하지만 이 시집도 내 마음을 딱 사로잡았다. 목차도 읽지 않고 그냥 몇 페이지 넘기다가 이 시인 나와 맞겠구나 촉이 온다. , 홀린 듯이 서너 편의 시를 읽고 시인의 약력을 살폈다. 경북 김천에서 출생하여 2012년 시산맥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짧은 약력 뒤로 호기심이 발동한다. 시 한 편 한 편이 예사롭지 않게 읽힌다. 모처럼 마음에 담을 만한 제대로 된 시인 하나 만난 기분이다. 시집을 읽고 작가를 논리적으로나 문학적으로 평가할 능력이 내겐 없다.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을 나열할 뿐이다. 이것이 아마추어 시 읽기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얼굴 ..

네줄 冊 2020.08.22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 허연 시집

허연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을 냈다. 어쩌다 그의 시에 중독이 되어 고대하며 기다렸던 시집이기도 하다. 이 시인을 알게 된 것은 세계사 시집을 만나면서다. 김형술, 이연주, 진이정, 유하, 그 사이에 허연이 있었다. 지독하게 외로웠던 시기에 그의 시를 만났다. , 제목부터 딱 마음에 들어오는 시집이었다. 내가 시를 읽었을 뿐인데 그의 시가 말을 걸었다. 눈물 나게 고마웠다. 위로 받고 싶을 때 다독여 주었고, 울고 싶을 때는 뺨을 때려줬다. 밝음보다 어둠, 기쁨보다 슬픔을 말하는 그의 시가 마음에 들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일까. 한동안 시를 쓰지 않은 탓에 점점 잊혀졌다. 10년이 훨씬 지나 잊고 살 무렵 두 번째 시집을 들고 나타났다. , 그가 먹고 살기 위해 시를 떠나 있었던 나쁜 소..

네줄 冊 2020.08.20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 도널드 홀

이 책은 미국의 계관 시인 도널드 홀(Donald Hall)이 여든 이후에 쓴 에세이다. 그래서 원래 제목도 다. 번역서인데도 제목을 잘 지어서 더 빛이 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그럴 것이다. 오래는 살고 싶은데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이라고,, 제대로 짚었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에 늙지 않고 오래 사는 경우는 없다. 도널드 홀은 1928년에 태어나 2018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훈장까지 받은 계관 시인이라는데 그의 시를 읽어보진 못했다. 희한하게도 70년 이상 글을 썼고 50권이 넘는 책을 출간한 유명 작가인데도 국내에 번역된 작품은 없다. 내 독서 편력이 협소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 책 외에 다른 작품을 찾을 수 없다. 경제, 정치, 문화 모든 면에 미국의 영..

네줄 冊 2020.08.17

당신이라는 갸륵 - 김인자 시집

김인자 시인을 언제부터 알았을까. 아마도 여행 산문집이었을 것이다. 이따금 도지는 무당의 신기처럼 떠돌기를 좋아해서 여행책이라면 무조건 읽고보는 시절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떠나고 싶은 마음만 앞설 뿐 차일피일, 흐지부지 지나가기 일쑤다. 이 시인의 산문을 읽으면 여행도 일종의 중독이다. 거기다 해외 여행도 자주 가는데 남이 안 가는 낯선 여행지를 간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곳보다 아무나 가지 않는 그의 여행지가 마음에 들었다. 일종의 비주류 여행지다. 이런 여행에 환호하는 것은 내가 아웃사우더여서 더 그럴 것이다. 예전에 그가 쓴 이라는 산문집을 읽으며 느꼈던 것도 그가 지독한 여행 중독자이면서 아웃사이더라는 것이다. 트럭을 개조한 버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짐바브웨, 잠비아, 말라위, 탄자니아, 케..

네줄 冊 2020.08.12

슬픔도 태도가 된다 - 전영관 시집

예전에 출판사 세계사에서 나오는 시집을 부지런히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온 시집은 어떤 것을 골라도 마음에 들어오는 시가 많았다. 시가 뭔지도 모르고 읽었던 시절이었는데도 눈에 들어오는 시와 겉도는 시는 구분이 되었다. 당시에 나온 대부분의 세계사 시집을 읽었다. 조금씩 시에 눈을 뜨게 해준 출판사라 하는 것이 맞겠다. 지금은 대표가 바꼈는지 아니면 출판 방향이 변했는지 시집 내는 것이 시들해졌다. 하긴 돈 안 되는 시집 출판이기에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다. 전영관 시인은 세계사에서 나온 첫 시집 를 읽고 알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첫 시집에 마음 주기 쉽지 않은데 제목만으로 눈에 확 들어왔다. 애초에 내가 타고나기를 바람기 가득한 창녀 기질에다 무당처럼 역마살과 바람이 난 신기 때문에 더 그랬을..

네줄 冊 2020.08.10

아빠의 아빠가 됐다 - 조기현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 또는 핏줄이 땡긴다, 등 가족이라는 끈을 강조하는 문구를 인용한다. 맞다. 어릴 때 헤어진 부모나 형제를 성인이 되어 못 알아보는 것은 연속극에서나 보는 일이고 대부분 닮은 꼴을 떠나 저절로 핏줄이 땡겨서 알아 본다. 둘 다 아기 때 헤어졌다면 혹 모를까 곧 데리러 오겠다며 떠난 오빠를 훗날 여동생이 못 알아 보는 연속극 설정은 유치하다. 그런 것을 울궈먹는 작가의 상상력도 대단하다. 아무리 세월이 지났어도 몇 마디 나눠보면 금방 핏줄임을 알 수 있는 끌림은 인간의 유전자다. 그런 가족이 때론 짐이 되거나 혹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낳아 준 것밖에 없는 아버지를 병간호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다. 넋두리가 아닌 가족이라는 끈을 끊지 못해 병든 아버지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의 생생..

네줄 冊 2020.08.07

우리는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죽어가고 있다 - 건국대 인류세인문학단

언젠가부터 인류세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다. 이 단어의 뜻을 인간이 지구에 살며 내는 세금으로 이해했다. 평소에 환경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도 인류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다룬 인류세는 人類世다. 하긴 그동안 인류는 편리함만을 쫓느라 갖은 방법으로 지구를 빨아 먹은 세금을 치르고 있으니 人類稅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코로나 19로 인해 일상 자체가 바뀐 것은 그동안 인류가 겪어왔던 수많은 질병과의 싸움이니 예외로 치자.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와 미세먼지로 겪는 고통은 제대로 치르고 있는 人類稅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비교적 싸게 치르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겪을 고통(세금)이 더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주 법칙까지 가지 않아도 세상엔 공짜란 없다. ..

네줄 冊 2020.08.03

토란꽃이 쏟아졌다 - 박미경 시집

아주 묵직한 시집을 읽었다. 우화적이면서 서사성이 강한 시들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OO했어요. OO할 거에요. 그랬습니다 등 경어체로 된 달달한 시와는 다르다. 단 것을 많이 먹으면 헛배만 부르고 목이 마르다. 시도 그렇다. 요즘 시들은 너무 달다. 꿀이라도 들었으면 다소 위안이 되련만 성분을 분석해보면 단 맛을 내는 것들이 죄다 인공감미료다. 달달한 문장, 현란한 수사(修辭), 거창한 문학이론까지 모범적으로 동원했지만 뒷맛이 공허하다. 아니면 내가 그런 시에 공감 못하는 문자부적응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류 시인보다 숨어 있는 비주류 시인에게 더 관심이 있다. 이 시집은 맺힌 것을 드러내지 않고 울음을 참으며 꾸역꾸역 쓴 시라고 할까. 그래서 매끄럽게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읽으면서 금방 맛이 느껴지..

네줄 冊 2020.07.27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 - 박선민

나이 먹을수록 점점 정치적으로 변한다. 신문을 봐도 늘 문화면이 먼저였는데 지금은 가장 먼저 정치면이다. 예전에 정치면은 건너 뛰거나 봐도 건성으로 봤다. 투표는 꼬박꼬박 했으나 내가 사는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누군지는 까먹기 일쑤였다. 심지어 내가 사는 곳의 구청장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물며 내 지역구에 시의원이 몇 명 있는 줄 알았을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시의원 이름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살지 않는 지역구의 국회의원 이름을 꽤 많이 기억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더욱 정치적으로 변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난데없는 가짜 정당이 출현하면서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소수정당을 배려하기 위해 좋은 뜻으로 개편한 선거제도가 이렇게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허점을 파고들어 가짜..

네줄 冊 2020.07.22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 이소연 시집

두 명의 우주 비행사가 뽑혀 우주비행 훈련을 위해 러시아로 떠났다. 우주선에 오를 순서는 남자가 먼저였다. 여자는 후보 우주인으로 남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자리를 메우는 대타였다. 남자 후보는 훈련 중에 시만 읽다가 우주선에 오를 자격을 잃었다. 후보였던 여자가 우주선에 올랐다. 우주선에서 내려다 본 지구는 정말 아름다웠다. 지구로 귀환 중에 여자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귀환 이후 더 단단한 우주인이 되겠다는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여자는 우주인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걸었다. 그래도 그녀가 우주인였음은 변함이 없다. 이 시집을 읽다가 문득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이 생각났다. 우주선을 타기 전부터 이소연에게 호감이 갔다. 공부 많이 하는 연구원이 소심하고 자기 표현이 서툰데 그녀는 자신의 생..

네줄 冊 2020.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