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 권혁란

마루안 2020. 10. 15. 19:52

 

 

 

흔히 죽기 딱 좋은 날이라는 문학적 표현을 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유명한 싯구도 있다. 아무리 상투적이라도 질리지 않는 문구임은 틀림없다. 이 책을 읽으면 가슴에 착 감기는 이 문구가 얼마나 소용 없는 문장인지를 알게 한다.

 

이 책은 작가 권혁란이 90세에 세상을 떠난 친정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한 이야기다. 원래 작가는 없는 얘기 지어내거나 경험한 일을 적더라도 각색을 한다. 그래서일까. 책에 실린 이야기가 순도 100% 실화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깔고 읽었다.

 

작가의 책이니 문장은 아주 술술 읽힌다. 작가의 어머니 김봉예 여사는 여섯 자식을 두었다. 작가는 김여사의 막내 딸이다. 자식 농사를 잘 지은 김봉예 여사는 당신이 원했던 것처럼 세상을 떠나지 못했다. 누구나 짧게 앓다가 깔끔하게 죽기를 원한다.

 

곧 떠날 듯 했다가 다시 원위치를 반복하는 바람에 작가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작가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꼭 보고자 했다. 어머니를 통해 한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어머니의 마지막은 큰언니가 지켰다. 

 

생전에 아무리 주변에 폐 안끼치고 깔끔하게 죽겠다는 다짐을 했어도 막상 죽음을 앞둔 사람이 병원에 입원하면 편안한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작가의 어머니도 그랬다. 죽어 가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작가는 이후 이렇게 다짐한다.

 

<'엄마처럼 저렇게 죽지는 않을 거야.' 하루가 더 지날수록 내가 늙을 것과 아플 것은 자명하고 죽을 것도 확실하니 뭘 더 꺼리겠는가. 아직 정신이 고만고만하고 총기가 있을 때 버릴 것은 버리고, 지울 것은 지우고 도장 찍을 것은 찍어야 했다>.

 

작가는 제일 먼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쓴다. 작가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에서 제대로 인생 공부를 한 셈이다. 생전에 이 명확한 문서를 작성해 놓지 않았을 때 겪는 고통을 어머니의 마지막을 보면서 생생하게 경함한 것이다. 이런 문장이 있다.

 

<환자는 살아 있는 동안 매일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배가 부를 만큼 진통제를 수십 알씩 먹고 팔뚝이나 손등이 새파래질 때까지 주사를 맞아야 한다. 목구멍을 뚫고 들어오는 밥물을 위로 집어넣어야 한다. 오줌이 관을 통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고 똥은 막을 수 없이 터져 나온다. 환자의 고통을 보고 가족들이 연명치료를 중단하거나 안 받게 하려면 엄청난 죄책감에 빠진다>. 맞는 말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꼭 필요한 이유다. 

 

이 책의 후반부에 부록처럼 시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시어머니는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고 10개월 후에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시어머니의 생전 유지는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누구도 부르지 말고 집에서 죽으면 바로 화장해주길 원했다.

 

작가의 남편을 포함해 세 아들은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가족 외에 아무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법적으로 불가능한 1일 장은 못하고 2일 장을 가족들끼리 조용히 치른다. 나는 이 장례식에 찬사를 보냈다.

 

작가의 시어머니도 훌륭하신 분이지만 아들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 이 모습 하나로 고인의 삶이 어땠는지 그 자식들의 인품까지 가늠할 수 있었다. 조문객은 물론 조화도 조기도 받지 않고 큰형 가족 네 명, 작가의 남편인 둘째 아들 가족 네 명, 미혼인 막내 아들까지 아홉 명이 빈소를 지킨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훗날 나는 이보다 더 간소한 나의 장례식을 생각했다.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장례식, 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가장 빠른 화장 후에 몇 줌의 가루를 뿌린 수목장이다. 이후는 모두에게서 곧 잊혀지길 원한다. 

 

이 책을 읽고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 또한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다. 그러나 잘 사는 것은 내 의지로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죽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래도 사전에 얼마나 준비하느냐에 따라 좀 더 생의 마지막이 홀가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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