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아무튼, 딱따구리 - 박규리

마루안 2020. 9. 23. 19:01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모처럼 큰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이 책은 크기가 시집보다 작은 아담한 문고본이다. 반면에 내용물은 그 어떤 책보다 감동과 배움을 주었다. 흔히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는데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디자인 연구원이다. 저자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유학해 엄청 생소한 분야인 지속가능 디자인 전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도 케임브리지 대학 공대 산하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겪은 일을 이 책에 담았다.

 

책 내용은 환경오염을 막고 자연 친화적인 삶을 지향하자는 말이다. 딱따구리가 기준점을 잡아 준다. 사람 주변에 숲이 사라지면서 딱따구리를 보기 어렵다. 저자는 세 개의 주거 공간에서 딱따구리를 만난다. 그래서 강릉 딱따구리, 케임브리지 딱따구리, 고척동 딱따구리로 장을 나눴다.

 

그녀는 강릉 신혼 집에 모든 것을 중고로 장만한다. 친정에서 물려준 것이나 재활용품점에서 구해 집안을 꾸민다. 그러나 냉장고와 침대, 그리고 밥 먹는 식탁만은 새것으로 산다. 자원 순환과 환경 다 중요하지만 신념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삶의 자율성을 잃고 피곤하게 되는 피해자는 되지 말자는 다짐에서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있을 때도 딱따구리가 찾아오는 집을 구한다. 한국에서 자원 재활용을 실천했듯이 영국에서도 대부분의 살림살이를 중고로 마련한다. 자전거의 도시 케임브리지에서 50년 된 자전거와의 동거는 이 책의 압권이다.

 

그녀는 작은 것을 실천한다. 아침을 먹고 접시에 남은 빵 부스러기 등을 정원에 나가 뿌린다. 새들 먹이로 주기 위해서다. 갑자칩이나 과자도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새들의 먹이로 준다. 그걸 아는 새들은 그녀의 정원에 자주 놀러온다.

 

눈물 많고 소박한 저자의 생활 태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이 대목은 너무 인상적이다. 이따금 멧돼지가 민가에 출몰해 사람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언급한다. 원래 야생 동물이 살던 땅에 인간이 침입해서 그들을 쫓아낸 것이라는 시각이다.

 

총을 겨누기보다 우리가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보다 우리가 집에서 식당에서 낭비하는 음식물을 만드느라 사라진 땅 정도는 우리가 노력해서 돌려줄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자 말한다. 입장 바꿔서 서식지가 위협 받고 먹이를 찾기도 어려운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야생동물에게 박수를 보낸단다. 참으로 신선한 시각이다.

 

저자는 세 번째 집으로 이사를 한다. 집을 찾는 조건이 신기하게 일반적인 선호 주거지 항목과는 반대다. 첫째, 새 아파트가 아닐 것, 둘째, 역에서 멀 것, 그리고 자연과 가까울 것, 다른 희망사항도 품는다. 삑삑 보안키를 눌러야만 현관에 이르는 아파트 입구나 엘리베이터가 없기를 바란다.

 

구로구 고척동에 그 세 가지 조건을 갗춘 집을 구한다. 저자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친정은 양천구 목동이다. 고척동은 목동에서 지척이다. 그러나 주거 환경은 많이 다르다. 전철역까지 가려면 마을 버스를 타고 15분을 가야 하지만 딱따구리가 사는 뒷산이 있다.

 

편리한 최신 시설과 거리가 있는 28년 된 작은 아파트지만 시야를 가로막는 고층 아파트가 없어 햇살이 찬란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호화로움을 누린다. 이 집 역시 새것보다 고물상이나 재활용품점에서 구한 것으로 꾸민다. 

 

이 집을 딱따구리 사랑방으로 칭하며 <쓰레기장에서 물건을 주워다가 수리하고, 전기세 줄이기 도전을 즐기고, 구멍 난 양말을 기우고, 물려받은 옷을 고쳐 입으며 주어진 물자 안에서 멋지게 살아보려고 고군분투하는 우리 부부의 지속가능한 삶의 실험장이다>라고 말한다.

 

궁상 맞다기보다 진정한 실천주의자다. 어떻게 하면 매일 쏟아져나오는 폐기물의 가치를 절하시키지 않고 멋지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 한다. 자원 순환의 우선 순위에서 보면 재활용(recycle)보다는 재사용(reuse), 재사용보다는 쓰레기 줄이기(reduce)가 환경영향 면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말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환경 문제도 입으로만 하는 걱정에서 실천하는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한 번뿐인 인생 편리한 문명 실컷 누리고 가는 것이 맞다면 뒤에 오는 후손은 어떻게 될까. 지구를 생각해서 조금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 더 아름다운 인생 아닐까.

 

일각에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영국 유학까지 하고 박사 학위까지 받은 재원이 고작 환경운동이나 하고 있으니 딱하다고,, 대부분 최대한 스펙 쌓고 많이 배워 인정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고액 연봉 받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래야 더디지만 아파트도 사고 차별 당하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 저자 같은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어쩌면 이것도 믿는 구석이 있는 배운 자의 자신감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지구 환경을 배려하며 마음이 부자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