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보이저 1호에게 - 류성훈 시집

마루안 2020. 10. 7. 22:42

 

 

 

 

이 시집은 제목부터 진공청소기처럼 내 마음을 빨아 들였다. 보이저 1호, 예전에 칼 세이건의 책 창백한 푸른 점을 읽고부터 관심이 생겼다. 평소 과학 뉴스에 그리 흥미가 없어서 보이저 1호가 보내 오는 우주 소식을 주목하지 않았다.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너무나 문학적인 제목에 이끌려 천문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가 점처럼 생긴 것보다 명왕성 부근까지 날아갔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태양계에서 가장 먼 명왕성이라는 이름이 좋았다.

 

명왕성의 영어 이름 플루토(Pluto)가 저승의 신 하데스의 라틴어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데 365일이 걸리는데 명왕성의 공전 주기는 약 248년이란다. 한동안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으로 불리다 자격을 잃었다.

 

그러나 명왕성은 자기를 행성으로 대접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 지구에 사는 인간들이 마음대로 이랬다 저랬다 했다. 명왕성은 그저 우주의 한 일원으로 묵묵히 태양 주위를 돌 뿐이다. 그것도 눈에 띌까 밝기가 아주 낮은 희미한 별이다.

 

지구를 출발한 지 40년이 훨씬 넘은 보이저 1호는 어떤가. 명왕성을 지나서 지금도 우주 여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백과 사전에서 얻은 지식으로는 인간이 만든 물체 중 가장 빠른 보이저 1호지만 다른 항성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4만 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란다.

 

또 우리 은하계에는 태양계와 같은 항성이 대략 1000억 개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렇게 우주는 표현이 안 될 만큼 엄청나게 넓다. 때문에 어젯밤 하늘에서 본 별빛도 몇 천 년, 몇 만 년 전에 그 별에서 출발한 빛이다. 우리가 보는 이 순간에 그 별은 벌써 없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집 읽은 후기에 엉뚱한 소리가 길었다. 첫 시집인데도 아주 강렬하게 다가왔다. 두 번 반복해서 읽었다. 시를 아주 잘 쓴다. 비교적 젊은 시인인데도 탄탄한 싯구에서 삶을 관조하는 힘이 느껴진다. 이런 시인은 웬만해서 밑천이 달리지 않는다.

 

특히 <틀니>, <담낭암>, <비문증> 등 느즈막에나 알 수 있는 인생의 쓴 맛을 아주 절절하게 표현했다. 시편들이 편차가 거의 없이 고른 것도 시집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하는 힘이다. 첫 작품부터 마지막 배치까지 순서도 적절해서 저자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모처럼 잘 다듬어진 시인 하나 만났다는 기분이다. 제목부터 작품 배치, 그리고 책 디자인까지 어느 시인이 대충 하겠는가. 그러나 이 시집은 유독 작가의 치밀한 의도가 엿보인다. 이런 자질은 단시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처음 만난 작가인데도 시를 읽는 내내 마음이 설렜다. 독자의 마음을 주무르는 것도 시인의 능력이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 시에 군더더기가 없다. 보이저 1호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테지만 다음에 나올 작품이 더욱 기다려지는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