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죽은 자의 집 청소 - 김완

세상에는 참 많은 직업이 있지만 죽은 자를 위한 직업은 특별하다. 옛날에도 염쟁이라 부르는 장의사와 대신 울어주는 곡비도 있었다. 집에서 죽어야 제대로 장례를 치렀지 밖에서 죽으면 객사라 해서 아예 집안에 들이지 않고 대문 밖에 시신을 안치했다. 지금은 장례 문화가 바뀌어 거꾸로 집안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임종을 하고 그곳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른다. 이 책의 저자 김완은 죽은 자의 흔적을 지우는 사람이다. 일명 특수청소부다. 일본인이 쓴 몇 권의 책에서 유사 내용을 읽었으나 한국인이 쓴 책은 처음이다. 대학에서 시를 전공한 사람답게 문장이 시적이다. 현장을 보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 상상이 되는 참혹한 경우가 많다. 죽은 사연도 참으로 다양하다. 병원에서 유언 남..

네줄 冊 2020.07.15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 - 오수완

아주 독특한 소설을 읽었다. 문체뿐 아니라 내용 또한 첫 페이지부터 번역된 외국 작가의 소설로 생각할 정도였다. 소설 잘 안 읽는 내가 흥미롭게 읽은 것도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의 관장이자 사서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곳에 가야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가득찬 어디에도 없는 책들을 위한 도서관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책들이 기증 받은 책이다. 애석하게도 그 도서관은 곧 문을 닫는다. 관장은 기증자들에게 폐관 소식을 알리며 책을 찾아 가라고 연락을 한다. 폐관식날 대부분의 기증자들이 자신의 책을 찾아 간다. 그러나 이색적인 기증자 은 끝내 연락이 없다. 소설에서는 그를 VK라는 약자로 표기하고 있다. 소설은 VK가 기증한 서른두 권의 책을 하나씩 소개한다. 그 속에 깃든 사연들과 ..

네줄 冊 2020.07.09

마침내, 네가 비밀이 되었다 - 김윤배 시집

생각하지 않던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김윤배 시인의 다. 김윤배 선생은 1944년 생이니 팔순이 가까운 원로 시인이다. 그동안 10권이 넘는 시집을 꾸준히 냈고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선생의 시가 변한 건지 내 눈이 변한 건지 우연히 잡은 시집을 여러 번 읽었다. 많은 시를 읽기보다 좋은 시를 반복해서 읽는 편인데 이 시집이 그랬다. 그동안 선생의 시집을 몇 권 읽었으나 크게 인상이 남지 않았다. 그의 시가 너무 고급스럽거나 나의 시 읽기가 너무 아마추어거나 둘 중 하나다. 내가 보기엔 시인의 시가 변했다. 이전 시집인 에서부터 느꼈다. 창비에서 나온 그 시집을 읽고 그 이전에 나온 시집을 찾아 읽으며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아! 같은 시인인데도 시집에 따라 내 마음에 들어오기도 하고 아무 공감..

네줄 冊 2020.07.08

민어의 노래 - 김옥종 시집

김옥종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시인이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조리사다. 내가 애독하는 한겨레 신문에 나온 기사를 읽고 목록에 올려 놓은 시인이었다.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서점에서 읽을 만한 신간 시집 없나 돌러보다 이 시집을 발견했다. 맛집이든 책이든 남이 추천하는 것을 무조건 따르지 않기에 시집 선택도 내 스스로 점검하고 결정한다. 어디까지 가 봤니,, 몇 편 읽으면서 단박에 괜찮은 시인임을 인정했다. 사투리를 사용한 싯구로 인해 지역색이 다소 진한 아쉬움에도 좋은 시가 많았다. 시집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세한 시인의 이력은 필수다. 이 시집에 대한 언론 검색을 했더니 몇 개의 기사가 나온다. 출판사에서 미리 작성해서 돌린 문장일까. 보도 매체는 다른데 알림 기사가 천편일률적이..

네줄 冊 2020.07.07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 김영옥 외

내용도 좋고 책 재질도 친환경적으로 소박하고 가격도 비교적 착한 책이다. 특히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독자를 물고기로 보고 제목으로 낚기 위한 함량 미달인 책이 많은 요즘인데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라니,, 언젠가부터 새벽 무렵 잠이 깨는 경우가 잦다. 나는 지독한 잠보였다. 누웠다 하면 업어 가도 모르고 아침 잠이 많아 천둥 소리처럼 요란한 알람 시계를 두 개씩 놓고 잤던 잠퉁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매일 잠자기 전에 알람 시계 하나는 책상 아래 깊은 곳에 감춰야 했다. 가까운 곳에 두면 잠결에 알람을 끄고 도로 자는 것을 방지하는 묘안이었다. 알람이 울리면 끄기 위해 의자를 꺼내고 책상 밑으로 들어가서 꺼야 겨우 잠을 깼다. 오십대가 되어 변한 게 있다면 노안이 온 것과 이른 아침..

네줄 冊 2020.07.03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 박래군

해마다 5월 말이나 6월 초쯤이면 마석 모란공원을 간다. 큰 의미 부여할 것 없는 추모 겸 소풍이다. 기차로도 가고 버스로도 가고 아름다운 소풍이다. 여름으로 접어든 주변 풍경과 마석이란 지명도 모란공원이란 이름도 그렇게 딱 어울리는지,, 이때쯤이면 모란공원 묘지 주변은 망초꽃을 비롯한 각종 들꽃이 지천이다. 잘 정돈된 국립현충원과 대비된다. 나는 칼처럼 각진 현충원의 경건함보다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모란공원이 인간적이어서 정감이 간다. 처음부터 계획적인 묘지 조성이 아닌 자연스럽게 형성된 곳이라 더 인간적이다. 줄을 세우지 않아 구불구불 삐뚤삐뚤,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묘지에서 죽은 자의 평등함을 느낀다. 전태일, 문익환, 조영래, 김근태, 노회찬까지 이름만 들어도 두근거리는 분들이 묻혔다. 모란공..

네줄 冊 2020.07.01

아무도 달이 계속 자란다고 생각 안 하지 - 강민영 시집

강민영 시인은 2015년 늦깎이로 등단해서 이번에 첫 시집을 냈다. 군대간 아들을 향한 애틋함을 담은 그의 산문집을 읽으면 그가 중년을 넘은 작가임을 알 수 있다. 일찍부터 글을 썼던 문장가임을 느낄 수 있는 중년의 첫 시집이 보석처럼 빛난다. 스마트 시대여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새것이 대접 받는 세상이지만 나는 늦깎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사전적 의미는 나이가 들어서 어떤 것을 시작하거나 뒤늦게 꿈을 이뤄 성공한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늦깎이의 본래 뜻은 을 일컫는 말로 나이가 들어서 머리 깎고 중이 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언어란 것이 생명과 같은 것이라 시대의 변화를 따라 이처럼 본래의 뜻이 변하기도 한다. 불교도는 아니지만 지금도 파르스름하게 깎은 스님의 머리를 보면 서늘해진다. 종교인도 ..

네줄 冊 2020.06.30

홀연, 선잠 - 김정수 시집

시집 나오기를 기다렸던 시인이다. 기다리면서 대충 예상은 했다. 천년의시작에서 조만간 시집이 나오지 않을까 했다. 문학 전문 메이저 출판사를 빼면 천년의시작이 가장 활발하게 시집을 내고 있는 출판사다. 한번 눈도장을 찍은 시인이 시집을 내면 검증 절차 없이 선택을 한다. 이 시집이 그랬다. 기대를 비껴가지 않고 모든 시편이 절절하게 가슴에 스며든다. 반복해서 읽고 싶은 시가 많은 시집은 한동안 가방 속에서 출퇴근을 함께 한다. 시집 하나 고르는데 뭐 검증까지야 할지 모르나 나름 검증을 까다롭게 한다. 많은 시보다 좋은 시를 읽고 싶은 사람의 시간 절약 방법이다. 목차에서 눈에 들어오는 시 몇 편 읽고 결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처음 보는 시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약력이 너무 부실해도 선택에서 제외 한다. ..

네줄 冊 2020.06.29

사랑이고 이름이고 저녁인 - 정진혁 시집

예전에 어느 지면에선가 시인들이 추천하는 시집 목록을 보고 꼼꼼히 기록했다가 하나 하나 찾아 읽었던 적이 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 본다지만 그 고상한 시집들은 대부분 나와 무관한 내용이었다. 그것으로 나의 시 읽기가 완전 하수임을 증명한 셈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나 다들 졸립다는 지루한 예술 영화는 진지하게 잘 보면서 왜 그런 고급(?) 시집에는 마음이 가지 않는걸까. 새로 생긴 애인에게 자랑할 일도 없는데 내용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억지로 읽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명사들이 추천하는 책도 마찬가지다. 분명 그들은 많이 배우고 성공한 사람들이라 내가 쳐다보지 못할 위치에 있는데 그들이 읽은 책은 별로 공감이 없다. 이후 나는 남들이 추천하는 책을 믿지 않는다. 나만의 방식으로 책을 고르고 ..

네줄 冊 2020.06.28

하모니카를 찾아서 - 이강산 시집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던 시인이었다. 신작 시집이 나온다는 소식에 반가움이 앞섰다. 천성이 게을러서 읽고 싶은 마음만 앞서지 서둘지를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단숨에 구입해서 읽었다. 역시 기다렸던 시집답게 마음 가는 시들이 가득하다. 이강산 시인은 시집 내는 주기가 많이 더딘 편이다. 등단한 지 7년 만에 첫 시집이 나오고는 10년이 지나서 두 번째 시집을 냈고 다시 10년 만에 세 번째 시집 을 냈다. 이번에 나온 네 번째 시집 가 6년 만에 나왔으니 많이 부지런해진 것이다. 시인은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등단 3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총 4권의 시집을 냈으니 과작인 셈이다. 시집 많이 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더라도 작품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과작이어서일까. 그의 시는 완성도 ..

네줄 冊 2020.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