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 - 최민아

빈익빈 부익부, 슬럼화된 거리, 폭등하는 집값, 떠도는 전세 난민, 쫓겨나는 임차인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집이다. 주거 불안정을 해소한다면 가정과 도시가 바뀌고 나아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고민해야 하는가. 노동자와 서민의 주거 권리를 떠올리며, 지속 가능한 주택 정책을 만들어 왔는가. 서민을 위한 주택을 짓는 것은 도시의 공공성을 찾는 일이고, 한정된 자원의 땅에 공공성을 부여한다. 함께 사는 사회,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은 노동자를 위한 베르사유궁을 꿈꾸던 이상주의자만의 바람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현실의 과제다. 새로 집을 사는 저 많은 사람은 중위값이 9억 원이 넘는 서울의 아파트를 살 재원을 어디서 마련하는 건지..

네줄 冊 2021.01.21

단 하나의 장면을 위해 - 최세라 시집

요 근래 좋은 시집 하나를 만나 며칠째 눈이 호강을 했다. 최세라 시집 다. 두 번째 시집에서 제대로 내 마음을 훔쳤다. 지방에서 나온 시집이다. 시집이 안 팔리는 시대에 이런 시집 만나기 쉽지 않다. 많은 것들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판에 출판계라고 예외가 아니다. 시와반시는 대구에 있는 출판사로 최근 좋은 시집을 꾸준히 내고 있다. 최세라 시집도 모 시인의 시집을 읽고 나서 찾게 되었다. 이런 때는 시집 뒤편에 실린 기존에 나온 시집 목록이 큰 도움이 된다. 행여 지나친 시집은 없는지, 묻혀 있는 시인을 발견해 알아 가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최세라 시집이 그랬다. 쏟아지는 시집들 중에서 눈 크게 뜨고 지켜보지 않는 한 놓치기 십상이다. 최세라 시의 특징은 매끄럽게 읽히지는 않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네줄 冊 2021.01.20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 한비야. 안토니우스 반 주트펀

여행가 한비야의 책이다. 세계 오지 마을을 여행하며 쓴 책 을 읽으며 참 당찬 여자구나 했다. 이런 여행은 용감하기도 해야 하지만 야물딱진 성격이 아니면 금방 포기하게 된다. 언젠가부터 그녀를 바람의 딸이라 불렀는데 참 어울리는 별명이라 생각한다. 글에서 비치는 예감은 이 여자 평생 혼자 살 사람이구나 했는데 짚신도 짝이 있다더니 60세가 되어 결혼을 한 것이다. 남편은 7년 연상의 네덜란드 남자다. 결혼은 했어도 함께 살지는 않는다. 이들 부부가 정해놓은 부부생활수칙은 꽤 특이하다. 이 책에는 두 사람 합의 하에 여러 생활 방식이 있는데 가장 특이한 것이 336 타임이다. 1년 중에 3개월은 남편 고향 네덜란드에서, 3개월은 아내가 있는 서울에서, 한 해의 절반인 6개월은 따로 떨어져 각자 사는 방식이..

네줄 冊 2021.01.17

나 혼자 남아 먼 사랑을 하였네 - 김점용 시집

작년인가? 김점용 시인이 아프다는 뉴스를 들었다. 뇌종양 수술을 받고 회복과 치료를 반복하며 투병 중이라는 소식에 시인의 시를 찾아서 다시 읽었다. 내 일기장 같은 이곳에도 여러 시가 올려져 있다. 공감한 시를 저장했다 틈틈히 읽기 위한 곳이 있어 다행이다. 평소에도 연락 오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내가 잘 움직이지 않으니 연락들 또한 뜸하다. 요즘은 지인들 안부 문자보다 재난 문자가 더 많이 온다. 재난 문자 울림이 없었다면 폰이 꺼져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망할 놈의 코로나 때문에 외부 활동이 줄어든 탓에 책 읽을 시간은 늘었다.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김점용 시인의 시집 발간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가 구입했다. . 제목이 참 좋다. 투병 중인 시인의 현재 상황을 느끼게 하는 제..

네줄 冊 2021.01.15

북극권의 어두운 밤 - 백인덕 시집

백인덕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을 냈다. 그의 시집을 언급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이 시인과의 인연은 꽤 되었다. 이 땅의 모든 시인을 사랑하고 싶지만 일면식도 없는 시인을 밑도 끝도 없이 예찬할 수는 없다. 많은 시를 읽기보다 공감이 가는 시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편이다. 영화도 여러 영화를 보기보다 한 감독의 작품을 집중해서 본다. 백인덕 시인도 집중해서 읽는 시인이다. 그의 시를 언제부터 읽었을까. 어느 시인의 시집 뒤편에 실린 해설에서 처음 접했을 것이다. 여러 시집에서 그의 발문이나 해설을 읽었다. 주례사 발문이든 쪽집게 해설이든 이 사람은 이런 글 전문인가 보구나 했다. 어디서든 만날 인연은 만나는 법, 헌책방에서 그의 첫 시집을 접했다. 우연히 발견한 , 큰 기대 없이 읽었으나 몇 편 읽으면..

네줄 冊 2021.01.12

술은 잘못이 없다 - 마치다 고

코로나 때문에 술집 간 지가 언제인가 싶게 까마득하다. 방역 상황에 따라 2단계니 2.5단계니 하지만 나는 스스로 3단계라 여기며 생활한다. 밀집 지역에 가능한 가지 않는 것, 가더라도 최소한의 시간만 머물다 나온다. 공공장소에서는 전화 통화는 물론 대화도 하지 않는다.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이 접촉하는 것 빼고는 지인들도 만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한다. 워낙 싸돌아다니는 편이라 처음엔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툭 하면 떠났던 여행도 가고 싶어 좀이 쑤시더니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된다. 이 징글징글한 나쁜 놈의 코로나 때문에 감옥살이가 따로 없다. 이럴 때 책 읽는 재미라도 없었다면 어떻게 견뎠을까.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이런 때 부지런히 읽자는 생각이다. 라는 이색적인 제목에 끌려 읽었다. 저자인 는 ..

네줄 冊 2021.01.08

오늘은 다르게 - 박노해

박노해의 는 지난 세기인 1999년에 나온 책이다. 21년이 지난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래 전에 읽었지만 코로나로 모든 일상이 망가진 시국에 다시 읽었다.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예전에 읽을 때도 그랬도 며칠 전 다시 읽을 때도 그랬다. 박노해는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길을 버리고 스스로 걸어 가시밭길로 나간 사람이다. 투사와 성자의 모습을 함께 간직한 사람이다. 그의 책에 무슨 사족을 붙인단 말인가. 구구절절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을 읽으며 시대와 불화한 그의 불온한 사상에 깊이 공감한다. 박노해는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는 지성인이다. 책에서 발췌한 구절을 옮긴다. 밑줄 긋고 외우고 싶은 문장이다. *나는 머리만 좋은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네줄 冊 2021.01.03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 - 성프란시스대학 편집위원회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코로나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망할 놈의 코로나, 나쁜 코로나 바이러스다. 일상이 너무 많이 바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가리고 사람을 피하는 것은 켕기는 것이 많은 사람의 행동이었다. 이 놈의 코로나가 오래 가기도 한다. 올 초만 해도 몇 달 조심하면 되겠지 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인내해야 하는가. 그래도 좋은 책이 있어 위로를 받는다. 서점 가서 실물 보고 꼼꼼히 선택하는 편인데 서점 나들이를 하지 않고 몇 권의 책을 주문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 제목이 흔한 듯하면서 아주 시적이다. 꽃이나 식물을 세는 단위인 송이와 포기는 언제 들어도 아름답다. 이 책은 노숙자들의 인문학 공부 결과물이다. 언젠가부터 노숙자가 노숙인이 되었다. 바뀐 호칭을 따라..

네줄 冊 2020.12.23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 허유정

난데없는 전염병으로 한해가 온통 엉망이 되었다. 처음엔 이 난리통을 몇 달 참으면 되겠지 했는데 진정이 되기는커녕 갈수록 태산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는지 감염자 숫자에 많이 둔감해진 편이다. 올초 마스크 대란 때는 살다살다 이런 일도 겪으며 사는구나 했다. 천정부지로 뛴 가격은 시장 원리 상 그렇다쳐도 사려해도 살 수 없는 것이 분통이 터졌다. 아무 날이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정된 날짜에 신분증이 있어야 마스크를 살 수 있는 기막힌 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한해가 간다. 며칠 전 연말을 일찌감치 조용히 집에서 보내기로 작정하고 여러 책을 주문했다. 그 중에 하나가 이 책이다. 라는 책 제목이 너무 착하다. 제목만 착한 게 아니라 내용도 착하기가 완전 무공해다. 세상에 나온 이상 목숨을 ..

네줄 冊 2020.12.18

자연의 권리 - 데이비드 보이드

나는 먹고 사는 데만 매달려 일생을 소비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 가난이 밀려온다는 진리 때문이다. 큰 재산은 아니지만 오직 노동으로 번 돈을 은행에 저축하는 것이 전부였다. 누구는 주식도 사고 부동산에 투자도 한다지만 나에게는 먼 얘기였다. 언제가부터 지구 환경에 관심이 많아졌다. 기후 위기도 환경 재난도 공부를 해야함을 알았다. 나는 자동차 만드는 기술도 모르고 코로나 백신도 만들 줄 모른다.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러나 환경 보호에 대한 작은 실천은 하고 있다. 고난도 기술이나 대단한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가능한 적게 갖고, 적게 쓰고, 적게 먹고, 적게 버리는 것, 그리고 분리 수거를 잘 하는 것, 화장실이든 동네 뒷산이든 구내 식당이든 내가 다녀간 흔적을 가능한 남기지 않는 것, 지구에는 ..

네줄 冊 2020.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