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이 몇 번 깜박거려도 - 이정희 붉은 계양대에 따개비 같은 바람이 잔뜩 붙어 있다 아무리 떼어내도 달라붙는 난폭한 바람 물밑을 알리는 부표 몇 시간을 달려온 어선들의 종착점, 어떤 파도도 물기둥에 떠 있는 아버지를 가라앉히지 못한다 중력을 만나야 무게가 생긴다는데 천적 바람과 주거니 받거니 실랑이를 벌여도 침몰하지 않는다 수평선에 더듬이를 세우고 마치 외계 같은 밀봉 속 그는 고요하다 몇 번 크게 들이마신 결심인 듯 단숨에 들이킨 심호흡같이 새어 나간 적 없는 공기가 깊고 깊은 물속을 수면 위에 올려놓고 배를 기다렸던 것이다 결심을 쉽게 풀지 않는 부표는 섬광 반짝이는 칠흑의 바다를 돌본다 물때만 끌어안는 굳건한 약속 어떤 폭풍에도 물밑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짭조름한 양수에 등을 대고 바다 안쪽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