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 천양희 아침 바람은 가로등에 스치고 눈 내리는 날엔 풍경이 풍경을 본뜨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하루에도 사계절이 있고 매일 실패하며 살기도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젊음은 제멋대로 왔다가 조금씩 물러나고 우리의 찬란이 세상 모르고 지나가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마음에도 벽이 있고 생각에도 동굴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닫고 살기보다 열어놓고 살기란 더 강력한 삶이라는 걸 알았을 때 세상은 살 만한 곳인가 묻기 위해 전전긍긍했을 때 마음에도 야생지대가 있군, 중얼거리며 내가 마침내 할 일은 죽기 살기로 세상을 그리워해보는 것이다 *시집/ 지독히 다행한/ 창비 사소한 한마디 - 천양희 1920년 뉴욕의 어느 추운 겨울날 가난한 한 노인이 “나는 맹인입니다.” 잭은 팻말을 들고 공원 앞에서 구걸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