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대광여인숙 - 석정미

마루안 2021. 12. 27. 19:23

 

 

대광여인숙 - 석정미

-꼽추 아저씨

 

 

유난히 지렁이가 많던 골목

햇볕은 따갑고 얇은 살 속으로

모래가 박혔다

 

꼽추에 난쟁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손수레, 좀약, 까만 고무줄 실은

세상에 필요한 슬픈 것들

사람들은 슬픔인 줄 알면서 골라 갔다

 

바닥을 끄는 지렁이 길

침을 뱉고 지나갔고

땡볕에 붉어지는 등

밟혀도 낮은 길뿐

 

저녁이면

대광여인숙 낡은 지붕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에

파란 소주병이 기울고

꿈길처럼 밀려오는

모서리 저녁노을

 

꼽추 아저씨도

세상의 지렁이도

날개가 없어 슬펐던 날들

 

밤이 오면

대광여인숙 간판에

백열등이 켜진다.

 

 

*시집/ 대광여인숙/ 어린왕자

 

 

 

 

 

 

대광여인숙 - 석정미

-앉은뱅이책상

 

 

작은 도랑을 하나 끼고

검은 통로 어둡고 긴 자취방

키만큼의 공간만 허락해

연탄불로 온기 나누던

방죽처럼 길쭉한 직사각형의 방

 

삐걱거리는 앉은뱅이책상과

단발머리 아이는 우두커니

학교가 끝나도 집에 오기 싫다

핫도그 집을 어슬렁거리며

오랫동안 씹던 소시지 막대

건널목에서 내 짝 소영이는 왼쪽

목련꽃 피고 피아노 소리가 나는 집으로 가고

 

흐린 물이 흐르고

장마가 지면

반짝이는 모래가 가끔 보이는 짧은 다리

가을이면 빨갛게 짙어가는 고추

갈비뼈처럼 가지런히 널린 토란대와

맨몸으로 말라갔지

 

외로움에 선잠을 깨면

저녁 어스름이 문틈으로 들어오고

화장실에 가고 싶어

방을 나와 다리를 건너면

대광여인숙 간판이 불을 켜지

기다림을 가르치는 지루한 길 위

암모니아 냄새에 점점 중독되고

 

버림받은 아이는

앉은뱅이책상과 살았지

 

 

 

 

*시인의 말

 

대광여인숙

골목길

흑백 사진속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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