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 나무는 이미 - 박인식

마루안 2021. 12. 28. 22:18

 

 

그 나무는 이미 - 박인식

 

 

얼마나 오랫동안 내가

죽어 지냈기에

숨죽여 나를 죽여왔으면

보다 못해 그 나무가

먼저 죽었을까

 

탁-

찰나의 삶을 죽음의 영원으로 꺾어

자신의 죽음 앞에 이미 와 있었던

내 죽음으로 데려가

 

지옥에서 보낸 랭보의 한 철보다

 

어느 날 산에서 영원으로 꺾어진 내 첫사랑의 스물두 살보다

 

죽음에서 보낸 내 여름 한 철

 

 

*시집/ 내 죽음, 그 뒤/ 여름언덕

 

 

 

 

 

 

즐거운 오타 - 박인식

 

 

방랑보다 황당한 인생은 없다던

내 방랑인생의 황당을

방랑보다 황홀한 인생은 없다, 는 황홀로 바꿔놓고

운전면허도 차도 없이

음주운전하는 음주시인을

음유운전하는 음유시인으로 가꿔놓고

 

산을 첫사랑한 산벗이

산벚꽃으로 진 슬픔을

산벚꽃 산에서 지다, 로 은유하더니

 

<내 죽음, 그 앞>이라는 이번 시집의 원제도

<내 죽음, 그 뒤>로 고쳐

죽음까지 살아서 즐기게 하는

 

오타의 즐거움

 

거기서도 여기서도

내 인생

 

즐거운 오타의 발견

 

 

 

 

# 박인식 작가는 1951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춥거나 춥지 않거나 시에 있다. 시집으로 <겨울모기>, <러빙 고흐 버닝 고흐>, <인수봉, 바위하다>, <언어물리학개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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