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당신과 그런 당신은 - 서화성

당신과 그런 당신은 - 서화성 꽃다운 이팔청춘이 강산처럼 퇴색되어 버린 얼굴 마냥 소녀일거라 믿었던 그런 당신은 가슴에 낙관을 새기듯 당신에게 한 발짝 다가선다 우주보다 더한 용기로 지탱해 온 돌계단에서 체념과 고통과 그 세월 앞에서 버틴 당신이기에 그 시간과 그런 당신은 야야, 야야, 어느 것도 버릴 수 없었던 당신은 샤워를 하듯 눈부시게 쏟아졌다는 지난 날, 굴곡처럼 파인 주름에서 당신을 만났을지 모른다 세월을 비켜선 당신에게 늘 그랬듯 당신은 몇 년째 그런 당신은 그 자리에 있는데 생(生)을 뒤집으면 사(死)가 되는 것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은 잊지 못함을 확인하는 일이다 버릴 수 없기에 사발그릇처럼 반달이 되어버린 당신은 앙상해진 나이지만 그런 당신은 화살처럼 기억되고 한때 아지랑이가 피듯 ..

한줄 詩 2019.07.21

한 열흘 - 한영수

한 열흘 - 한영수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끝나도 좋은가 그럴 때 매미는 운다 가까스로 뛰쳐나온 목소리 아프다, 소리친다 밉다, 외친다 나무껍질을 움켜쥔 여섯 개 발톱의 리듬으로 나야, 정말로 나야 한 열흘 말매미나 되어버릴까 조금 울다 마는 애매미는 싫다 반복은 지루하지, 중얼거리는 것이 습관인 참매미는 싫어 거짓말처럼 화려하게 색소란 색소는 탕진해버릴까 이파리 뒤 내가 만든 세상에서 안 보이는 세상을 붙잡고 밥도 안 먹을 테다 또도 내버려둘 테다 물방울만 삼키고 삼키고 야단법석 그 사랑 하나 완성해버릴까 *시집, 꽃의 좌표, 현대시학 조연 - 한영수 돌 하나가 날아왔다 무엇을 바로 보자는 걸까 왼손 안에 꼭 쥐어졌고 그만한 정도의 침묵이 심장을 눌렀다 처음에는 영화나 보자는 것이었다 장발장으로 오래 익..

한줄 詩 2019.07.20

강변 여인숙 - 서규정

강변 여인숙 - 서규정 그냥 여기서 조금만 머물다 갈까 미루나무 잎이 불러서 왔느냐면 그렇다고 그러지 애늙은이처럼 채 피지도 않아 울 밑으로 비켜선 이 봉선화 꽃집 쥔 여자에게 등 떠밀려 들어선 방 금간 벽엔 어! 못, 옷걸이 못에 목이 박혀서야 둘러보면 온갖 잡념들이 꺼진 TV 씹다만 껌 붙여두었다 다시 떼어 씹는 껌 자리처럼 영 꿈자리가 얼룩덜룩 할 것만 같은 여인숙에 방을 얻어두고 나와 물기 하나 없이 돌아눕는 이 강변을 거닌다는 것이냐 구구절절 옳고 바른 소리로 끓던 강물 곁엔 궁둥이를 남기고 갈 오리는 오리 떼를 따라 어구적어구적 걷는다마는 그렇게 불러 젖혔어도 지금은 잊혀져 생각 안 나는 노래들이 부석부석 뼛가루처럼 스민 모래 위를 목이 막혀서 걷는다마는 노래가 강물이던 시절 나는 어느 구호를..

한줄 詩 2019.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