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포구에서의 밤 - 강회진

마루안 2019. 7. 20. 21:25



포구에서의 밤 - 강회진



낯선 포구에서 펴주는 이불은

반달이 걸어준 전언이었다

골목까지 들이치는 파도소리에

납작 귀 기울이는 집들

꿈속에 걸린 허공의 방

몸 절반 절단내고도

천연스레 밤마다 밝히는

선미등 주위로

지친 파도 오글오글 몰려든다

사그라드는 불빛 따라 떠났던 배들

서둘러 돌아오고

배경처럼 물새 몇 마리

붉게 물든 바다 몇 조각 물고

새벽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너무 오래 이곳에 머물렀을까

내 몸 절반에 켜진 불빛 들고

일출까지 무릎 세우고 있어야겠다



*시집, 일요일의 우편배달부, 문학들








꽃피는 옥탑방 - 강회진



어둠이 벌레처럼 파먹다 버린 상현달

옥탑방으로 오르는 계단까지 내려왔다

깜빡, 별 하나에 어두운 하늘 빗장을 연다

목까지 여민 외투자락

공장에서부터 따라온 먼지들

달빛에 반짝거리고

집으로 향하는 무수한 계단 오를 때마다

자꾸만 숨이 차오른다

허름한 골목 쪽 반쯤 기운 달,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면 옥탑방은 아직 멀다

낯선 땅에 몸 부릴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스스로 견딜 만하다, 숨 고르는데

바람 한 점 담장 아래 붙어 있던 라일락 꽃송이

툭 건드리며 지나간다

무수한 꽃배들 어둠 속 출렁이며 떠다니다가

나보다 먼저 옥탑방 문을 연다

찢어진 골목들이 향기로 봉합되고

나직나직한 등불, 꽃배로 흐르는 밤






*시인의 말


일 년 중 오동꽃 피는 날은 여러 날,

그 가운데 꽃과 달이 만나는 날은 겨우 며칠.

그대를 만나는 날이

단 하루라 해도 족하다.

떠나지만 말아다오.

어둡고 깊은 여름 숲에서 소쩍새 운다.

그 소리에 오동꿏 피고 진다.

세상 허투루 돌아가는 법 없음을 믿는다.

더 정성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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