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에서의 밤 - 강회진
낯선 포구에서 펴주는 이불은
반달이 걸어준 전언이었다
골목까지 들이치는 파도소리에
납작 귀 기울이는 집들
꿈속에 걸린 허공의 방
몸 절반 절단내고도
천연스레 밤마다 밝히는
선미등 주위로
지친 파도 오글오글 몰려든다
사그라드는 불빛 따라 떠났던 배들
서둘러 돌아오고
배경처럼 물새 몇 마리
붉게 물든 바다 몇 조각 물고
새벽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너무 오래 이곳에 머물렀을까
내 몸 절반에 켜진 불빛 들고
일출까지 무릎 세우고 있어야겠다
*시집, 일요일의 우편배달부, 문학들
꽃피는 옥탑방 - 강회진
어둠이 벌레처럼 파먹다 버린 상현달
옥탑방으로 오르는 계단까지 내려왔다
깜빡, 별 하나에 어두운 하늘 빗장을 연다
목까지 여민 외투자락
공장에서부터 따라온 먼지들
달빛에 반짝거리고
집으로 향하는 무수한 계단 오를 때마다
자꾸만 숨이 차오른다
허름한 골목 쪽 반쯤 기운 달,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면 옥탑방은 아직 멀다
낯선 땅에 몸 부릴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스스로 견딜 만하다, 숨 고르는데
바람 한 점 담장 아래 붙어 있던 라일락 꽃송이
툭 건드리며 지나간다
무수한 꽃배들 어둠 속 출렁이며 떠다니다가
나보다 먼저 옥탑방 문을 연다
찢어진 골목들이 향기로 봉합되고
나직나직한 등불, 꽃배로 흐르는 밤
*시인의 말
일 년 중 오동꽃 피는 날은 여러 날,
그 가운데 꽃과 달이 만나는 날은 겨우 며칠.
그대를 만나는 날이
단 하루라 해도 족하다.
떠나지만 말아다오.
어둡고 깊은 여름 숲에서 소쩍새 운다.
그 소리에 오동꿏 피고 진다.
세상 허투루 돌아가는 법 없음을 믿는다.
더 정성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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