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사진 찍기 좋은 날 - 김애리샤

사진 찍기 좋은 날 - 김애리샤 아버지는 고장 난 라디오 더 이상 맑은 노랫소리 내보내지 못한다 모든 주파수가 흐려져 중심을 잃었다 장마가 시작됐다고 일기예보는 호들갑 떨었지만 오늘은 사진 찍기 좋은 날 볕 좋은 초여름 한켠에 몸을 밀어 넣고 나들이 간다 휠체어 바큇살 사이로 넘쳐 흐르는 은빛 축복들은 돌아오는 여름마다 탐스런 꽃을 피워내는 사소함으로 아버지 다리 어루만진다 몽실몽실 수줍게 피어오른 수국 엷은 미소처럼 어릴 적 할머니가 쪄 주시던 뽀오얀 밀가루 빵처럼 포송포송 부풀어 올라 기쁜 사진 한 장 찍고 쪼그라든 마음 한 가득 초여름 바람도 불어 넣었다 아버지가 살아 온 인생에서도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 건져 올리고 찍어내어 우주 끝까지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기억들을 너무 오랫..

한줄 詩 2019.07.03

모래내 밤 - 신동호​

모래내 밤 - 신동호 ​ 창살이 오히려 그대의 자유를 묶는다면 아침 햇살에 눈 뜰 수 없구나, 봄날 때때로 바람만 서늘히 뒤척이는 그대 이부자리를 비집는가 헤진 바람이 그리움만 남기고 떠나는가 언덕을 오를 때부터 산비탈을 구른 바람이 모래언덕이었다고 말해준다, 모래내 한때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데 사랑이었노라고 바로 그게 모래언덕인가 차라리 슬프다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므로 햇살은 들었는가 아침인데 어둔 그림자 아직 그대의 추억은 느린 걸음 기다린다는 것은 닫힌 창. 미안하다 모래내 밤은 저 홀로 깊어 잦아든다 그대 오늘 꿈꾸고 싶은 미래처럼 아무래도 올 것 같지 않던 아침처럼 이부자리 코 내밀고 쉬고 싶은 고향 생각처럼 어느 날 그대의 잠을 깨운 전화벨처럼 사랑은 어쩌면 다른 곳에 상처를 남기는..

한줄 詩 2019.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