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랑의 신심명 - 이원규

마루안 2019. 7. 21. 19:06



사랑의 신심명 - 이원규
-격외론 12



그러다 망한다
맨 처음 그날의 눈빛
커피 스푼 떨리던 그 손길만 생각하며
권태의 나이테만 헤아리다 다 망친다
온몸 찌르르 첫 사랑에 집착하며
사랑을 구걸할수록 여지없이 깨지는 거울
한 조각만으로 어찌 서로 알아볼 수 있을까
그래도 한때의 거친 숨결로 침대는 빼걱거리고
불타는 눈빛 그 검은 그을음으로
한 지붕 서까래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하지 마라, 마라, 잔소리 대신
할 수 있으면 차라리 죄라도 지어라
죽니 사니 발광해도 눈시울 촉촉할 때 있으니
굳이 다른 나무에서 새를 찾지 마라
너는 내가 아니어도 나는 너의 새
이를 아는 순간 다시 밥상 차릴 것이니
첫 마음도 출렁, 이혼도장에 새싹 돋을 것이니



*시집,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 역락








먼저 핀 꽃 - 이원규
-격외론 3



먼저 핀 꽃은 물러설 줄 안다
빛바래 떨어지면서 그 향기 더욱 진하다


옆 나무 옆가지 다른 꽃봉오리들에게
얼씨구, 좋다, 잘한다!
떨어지면서도 한 바퀴 더 추임새를 넣는다


이른 장마에 허허실실 풋 열매 내려놓아도
때가 오면 설중매 저 먼저 꽃을 피운다


세상 모든 길은 그 이후의 일
앞선 사람은 굳이 발자국을 새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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