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슬픔은 어처구니없게도 - 오창렬

마루안 2019. 7. 21. 19:20



슬픔은 어처구니없게도 - 오창렬



출근길 골목으로 울음소리 흘러나온다
깊고 가늘어진 소리, 간밤 누가 떠난 모양이다
밤을 새워 따라가도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모양이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 어쩌면
영원을 지나도 만날 수 없는 시간 속으로,
기약도 없이 떠난 모양이다 그리하여
평원을 걷는 큰 걸음처럼 툭 터진 첫 울음은
질주하듯 북받치는 설움으로 이어지고
밤새 고개 넘어 산등성이에 이르렀을 것이다
안간힘으로도 닿지 못하는 먼 길과 아득한 시간 앞에서
목은 메고 자꾸 잠겼을 것인데
떠난 후에야 다시 보이는 두렷한 모습,
떠나버린 후에야 솟구치는 그리움,
아침이 되어도 검게 흐르는 강은 어처구니없게도 리듬을 만들어
끄어이, 꺼이, 울음소리 구성도 지다
끊어질 듯 이어지며 골목 적시는 소리
너와의 없는 기약을 두고 한 방울의 눈물도 가꾸지 못한
내 슬픔까지 적시는 소리



*시집, 꽃은 자길 봐주는 사람의 눈 속에서만 핀다, 모악출판사








바람 지날 만한 - 오창렬



나와 너 사이로 바람 분다면
눈 녹고 꽃 피는 일이 우리 사이의 일이겠다
그런 이유로 마냥 봄인 날들,
피는 꽃의 향기는 네게 닿고
꽃 향이 내게 올 때 너도 함께 묻어오겠다
너와의 사이라면 바람에 꽃잎 지는 것도 나는 춤이라 여기고
낙화도 하냥 꽃이라 하겠다 쓸어내지 않겠다
낙화가 이루는 꽃길 걸어 너와 나
손잡으리니, 손잡고 가리니,


아무리 가까워도 우리 사이, 바람 지날 만한 틈은
있어야겠다 너와 나의 사이,
사이의 사이로 지나는 바람이
간질간질 사이를 간질여 가꾸리니,
여름 장마엔 습기를 걷어 가고
물기 말리며 가을도 꽃처럼 단풍 들리니,






# 오창렬 시인은 1963년 전북 남원 출생으로 전북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9년 계간 <시안>으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서로 따뜻하다>가 있다. <꽃은 자길 봐주는 사람의 눈 속에서만 핀다>는 두 번째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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