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당신과 그런 당신은 - 서화성

마루안 2019. 7. 21. 18:42

 

 

당신과 그런 당신은 - 서화성

 

 

꽃다운 이팔청춘이 강산처럼 퇴색되어 버린 얼굴

마냥 소녀일거라 믿었던 그런 당신은

가슴에 낙관을 새기듯 당신에게 한 발짝 다가선다

 

우주보다 더한 용기로 지탱해 온 돌계단에서

체념과 고통과 그 세월 앞에서 버틴 당신이기에

그 시간과 그런 당신은

야야, 야야, 어느 것도 버릴 수 없었던 당신은

 

샤워를 하듯 눈부시게 쏟아졌다는 지난 날,

굴곡처럼 파인 주름에서 당신을 만났을지 모른다

세월을 비켜선 당신에게 늘 그랬듯 당신은

몇 년째 그런 당신은 그 자리에 있는데

 

생(生)을 뒤집으면 사(死)가 되는 것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은 잊지 못함을 확인하는 일이다

버릴 수 없기에 사발그릇처럼 반달이 되어버린 당신은

앙상해진 나이지만 그런 당신은 화살처럼 기억되고

한때 아지랑이가 피듯 이불을 덮고 있었다

다리를 만질 때면 닭똥 같은 눈꽃이 번졌다

괜찮냐는 말에 그럴 때마다 새벽을 지나 당신이 왜 우는지

 

이 지겹던 여름,

상여꾼처럼 내딛는 영락공원에서

그런 당신은 그렇게 나이를 먹고 있었다

 

 

*시집/ 언제나 타인처럼/ 시와사상사

 

 

 

 

 

 

지팡이 - 서화성

 

 

하루 종일 애인을 잃어버린 것처럼

산다는 것과 숨 쉰다는 것은 별개라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괜찮다는 말

심장이 아프다는 말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말 한마디 핑계로

촛농처럼 가슴에서 굳어갔다

객석과 관객 사이처럼

허전함이 한꺼번에 사라졌던 그날,

호호 불어 겨울이 식기만 기다렸던 호빵처럼

나는 당신의 왼발이 되고 싶었다

나는 당신의 심장이 되고 싶었다

저 높은 알프스산맥을 지나

넓은 사하라사막을 지나

나는 당신의 오른발이 되고 싶었다

나는 당신의 어머니가 되고 싶었다

양떼들이 구름을 만드는 산길에서

나는 눈 먼 당신이 되고 싶었다

빗소리를 듣고 싶었다

아주 먼 훗날,

당신과 이별하는 그날, 

뼈 속까지 시리도록 포옹을 하고 싶었다

비틀즈의 음악처럼

나는 당신에게 그렇게 가고 싶었다

 

 

 

 

*시인의 말

 

하얀 눈이 마을을 덮어

흰 도화지처럼 되어버린 당신,

당신이 그저 당신인 줄 알았다

당신이 꽃인 줄 몰랐다

그런 당신이 엄마인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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