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존재하는 것들 - 김유석 겨우 존재하는 것들 - 김유석 어물전 망신 꼴뚜기가 시킨다는 말, 실은 꼴뚜기가 꾸민 얘기다. 부릅뜬 동태의 눈 눈을 한쪽으로 몰아 째리는 가자미 틈새 막돼먹은 듯한 처지를 감당해야 하는 슬픔 오징어 일족으로 치자니 주워 온 자식 같고 한치 새끼라 하면 한 치 앞도 모르고 꼴값 떠.. 한줄 詩 2018.02.25
주저흔 - 박성준 주저흔 - 박성준 숲이 나를 불렀으니 이제 좁은 몸속 옷장에 걸려 있는 바람들 흐물거리는 빗장뼈를 밤의 내부로 가라앉히네 두꺼운 승모근이 옷걸이마다 붙잡고 있던 바람 꼬리 아홉 개 달린 별똥별 여우야 가지마 가지마 나는 밤을 만지려고 그림자에 스며들어 누웠네 뻐꾸기시계를 끌.. 한줄 詩 2018.02.25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것들 친구가 염색을 했다고 했다. 유난히 까만 머리가 오히려 어색하다. 노안, 흰머리, 불면,,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것들이다. 중년은 이래서 슬프다. 인정하기도 거부하기도 애매한 나이,, 나도 곧 염색할 날이 오겠지. 열줄 哀 2018.02.25
내일의 펀치- 오민석 내일의 펀치- 오민석 자전거를 탄 소년이 별촌리 바닷가를 지난다 몸통 가득 햇살인 아이 때문에 바다는 퍼렇게 멍들어 있다 생(生)이 벌써 배경으로 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꽃이 다시 피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도 얻어터지니 어디가 끝인 줄 모르겠다 철모르고 피어난 동백꽃.. 한줄 詩 2018.02.25
감쪽같이 실패하는 법 - 박세현 감쪽같이 실패하는 법 - 박세현 세상에 와서 이렇다 할 명예를 모은 것도 아니고 떵떵거릴 돈을 모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라면 이거, 실패한 것 아닌가 국회의원이 되어서 세금을 축내지도 못하고 강남구에 살아보지도 못했다면 실패한 삶이 아닌가 .. 한줄 詩 2018.02.25
무연고 묘지 - 윤희상 무연고 묘지 - 윤희상 죽음은 그렇게 땅으로 스며드는 것 저 하늘로 스며드는 것 불어가는 바람 속으로 스며드는 것 산길을 오르다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무덤을 보았다 봉분이 낮아지고 있었다 새소리가 들리고 이제 무덤은 보이지 않으리라 어떤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와서 .. 한줄 詩 2018.02.25
맹목적인 황혼의 역행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는 어르신이 있다. 거의 쪽방 수준인 그의 공간에는 온갖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일찌기 그와의 인연으로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있던 가족도 뿔뿔히 흩어졌다. 그에게 남은 건 방바닥에 널려있는 물건들처럼 어수선한 추억들 뿐이다. 펑생 가난하게 살았고 단촐한 삶은 팔십이 넘어도 여전하다. 그가 말했다. 어서 죽어야 할 텐데,, 늙으면 죽어야지. 폐만 끼치고 말야, 그의 목소리는 한쪽에 치워진 양은냄비처럼 덜그럭거렸다. 거동이 불편한 그를 대신해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손톱도 깎아주었다. 야윈 손이 수수깡처럼 가벼웠다. 손톱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말동무를 해주다 그의 집을 나섰다. 큰 길로 나오니 함성소리가 요란하다. 종로 거리 한쪽 방향을 노인들이 완전히 점령했다. 태극기를.. 열줄 哀 2018.02.24
어둠이 사는 이유 - 이창숙 어둠이 사는 이유 - 이창숙 실내등을 끄고 커튼에 깃든 어둠을 반쯤 열면 길모퉁이에 4월 저녁이 돌아와 서 있다 이젠 내게서 칭얼대던 무거운 생각들을 내려놓아야지 혼자서 봄 강을 건널 수 있게 꽃 피울 수 있게 베란다를 보니 지난겨울 얼어죽은 영산홍의 어린 나무가지가 생선 가시.. 한줄 詩 2018.02.24
집 잃은 달팽이 - 박주하 집 잃은 달팽이 - 박주하 너무 멀리 왔다고 말하진 않겠다 두고 온 집을 기억하는 것이 언제나 더 끔찍했으므로 총알처럼 날아다녔던 것이다 목적 없는 탄알처럼 길을 헤매었던 것이다 공중에 몇 채의 집을 날려 보냈으나 생의 곳곳에는 눈물도 더러 있었기에 나는 온전히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달 속에 파도가 있었다 넘실대는 물결은 비밀처럼 달콤했으며 잦은 배고픔도 나의 소관은 아니었다 지상은 눈시린 정면이었으나 그 파도 속엔 망각을 위한 망각이 반듯했다 긴 어둠 속으로 점점 얇아지는 나의 집이 아침마다 태어나는 나를 다시 불러들이진 못했다 죽어도 죽지 않는 불길함처럼 집이 있던 자리가 계속되어도 이미 마음이 버린 집을 깊이 살았다고는 더더욱 말하지 않겠다 *시집, 숨은 연못, 세계사 감기지 않는 눈 - 박주하 바.. 한줄 詩 2018.02.24
솔직한 식품 - 이한승 아주 유용한 책 하나를 만났다. 은 매일 먹는 식품에 관한 잘못된 상식을 지적해 주는 책이다. 일방적인 강요도 없다. 자신이 연구한 분야에 대한 애정과 좀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저자의 열정이 느껴진다. 마치 시장통 약장수처럼 책을 팔기 위한 장삿속으로 쓴 책이 많은데 이런 책이라면 많이 팔려서 독자는 올바른 정보를 얻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는가. 함량 미달의 책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렇게 속이 알찬 책은 소중한 자산이다. 저자는 많이 알려진 사람은 아니다. 지방의 한 대학에서 후학과 연구를 하는 교수로 자신의 전문 분야를 아주 쉽게 저술한 역작을 남겼다. 큰 소리 내지 않고 조근조근 써내려간 식품 상식을 읽으며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몸에 좋다 알고 있던 식품 상식을 정.. 네줄 冊 2018.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