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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황혼의 역행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는 어르신이 있다. 거의 쪽방 수준인 그의 공간에는 온갖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일찌기 그와의 인연으로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있던 가족도 뿔뿔히 흩어졌다. 그에게 남은 건 방바닥에 널려있는 물건들처럼 어수선한 추억들 뿐이다. 펑생 가난하게 살았고 단촐한 삶은 팔십이 넘어도 여전하다. 그가 말했다. 어서 죽어야 할 텐데,, 늙으면 죽어야지. 폐만 끼치고 말야, 그의 목소리는 한쪽에 치워진 양은냄비처럼 덜그럭거렸다. 거동이 불편한 그를 대신해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손톱도 깎아주었다. 야윈 손이 수수깡처럼 가벼웠다. 손톱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말동무를 해주다 그의 집을 나섰다. 큰 길로 나오니 함성소리가 요란하다. 종로 거리 한쪽 방향을 노인들이 완전히 점령했다. 태극기를..

열줄 哀 2018.02.24

집 잃은 달팽이 - 박주하

집 잃은 달팽이 - 박주하 너무 멀리 왔다고 말하진 않겠다 두고 온 집을 기억하는 것이 언제나 더 끔찍했으므로 총알처럼 날아다녔던 것이다 목적 없는 탄알처럼 길을 헤매었던 것이다 공중에 몇 채의 집을 날려 보냈으나 생의 곳곳에는 눈물도 더러 있었기에 나는 온전히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달 속에 파도가 있었다 넘실대는 물결은 비밀처럼 달콤했으며 잦은 배고픔도 나의 소관은 아니었다 지상은 눈시린 정면이었으나 그 파도 속엔 망각을 위한 망각이 반듯했다 긴 어둠 속으로 점점 얇아지는 나의 집이 아침마다 태어나는 나를 다시 불러들이진 못했다 죽어도 죽지 않는 불길함처럼 집이 있던 자리가 계속되어도 이미 마음이 버린 집을 깊이 살았다고는 더더욱 말하지 않겠다 *시집, 숨은 연못, 세계사 감기지 않는 눈 - 박주하 바..

한줄 詩 2018.02.24

솔직한 식품 - 이한승

아주 유용한 책 하나를 만났다. 은 매일 먹는 식품에 관한 잘못된 상식을 지적해 주는 책이다. 일방적인 강요도 없다. 자신이 연구한 분야에 대한 애정과 좀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저자의 열정이 느껴진다. 마치 시장통 약장수처럼 책을 팔기 위한 장삿속으로 쓴 책이 많은데 이런 책이라면 많이 팔려서 독자는 올바른 정보를 얻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는가. 함량 미달의 책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렇게 속이 알찬 책은 소중한 자산이다. 저자는 많이 알려진 사람은 아니다. 지방의 한 대학에서 후학과 연구를 하는 교수로 자신의 전문 분야를 아주 쉽게 저술한 역작을 남겼다. 큰 소리 내지 않고 조근조근 써내려간 식품 상식을 읽으며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몸에 좋다 알고 있던 식품 상식을 정..

네줄 冊 2018.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