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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의 생 - 김추인

틈새의 생 - 김추인 -모래가 키우는 말 사막에 서면 고향 언덕 같아 주저앉고 싶다 끝도 없는 모랫벌 바람치는 벌판이 내 속만 같아서 그 휑한 가슴 껴안고 싶다 혼자가 아니라도 홀로인 시간 죽을 만큼 쓸쓸해서 눈뜰 씨알조차 없이 마르는 땅 있다 가시풀 음지의 살 틈에 전갈이나 키우는 불모의 땅 있다 사막의 정오 열사뿐인 모래의 불길 속을 막창자 꼬리까지 탱탱한 독을 뻗쳐들고 전갈들이 질주한다 비로소 사막에 길이 난다 누가 알 것인가 내 열두 늑골 뗏장 밑에 엎드려 향방 없는 일상의 사막 가운데로 때없이 날 내달리게 하는 독푸른 전갈 한 마리를 *시집, 모든 하루는 낯설다, 세계사 보증 또는 보류 - 김추인 증을 믿는 사람들에게 실체는 허수아비다 생애의 중요한 일마다 앞에 나서서 콩이다 팥이다 증거하고 보..

한줄 詩 2018.02.18

낯선 곳에서, 낯선 - 김정수

낯선 곳에서, 낯선 - 김정수 내 방 동쪽에 조그만 창문 하나 나 있고 햇살은 물 속의 유리막대처럼 휘어져 들어온다 나도 투명하게 휘어져 있다 늦은 아침 길게 연기를 매단 산 아래의 굴뚝들 집 한 채씩 소유하고 있다 늦게 싹을 틔운 나도 미끈한 굴뚝 소유하고 싶었지만 비탈진 골목 벗어나기도 전에 자빠지곤 했다 산 위에서 시작한 삶은 산 위에 머물렀다 산 아래서 시작한 삶도 한 번 올라오면 물처럼 밑으로 흐를 수 없었다 저기 또, 뿌리 잘린 사람들 무리 지어 올라온다 몇 번 자빠진 후에야 비탈진 길에 익숙해지리라 하늘을 다 가진 창문으로 햇살이 휘어져 들어오고 오늘도 죽어야 산 위에 오르는 무리 속으로 향한다 *시집, 서랍 속의 사막, 리토피아 목수 - 김정수 그는 목수였다. 60평생 60십 채가 훨씬 넘..

한줄 詩 2018.02.18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 - 주영헌 시집

인연이 닿는 책은 언젠가는 내 그물망에 걸려 손에 잡힌다. 오래전에 기억했다가 발견한 책도 있고 이미 있었으나 내가 모르던 것이 나중 발견된 책도 있다. 이 시집은 이미 존재했으나 우연히 내게 발견되어 인연이 닿은 책이다. 중년에 접어 들면서 노안이 와서 눈이 쉽게 피로하고 집중력도 떨어짐을 느낀다. 아무리 외면하고 아닌 척 해도 조금씩 오줌발이 약해지는 것처럼 팔팔했던 시절의 싱싱한 눈이 발휘했던 독서력은 점점 떨어진다. 궁상스런 이런 말을 늘어 놓는 것은 읽어야 할 책은 늘어나는데 읽은 책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고를 때 더욱 까다롭게 고른다. 아무 책이나 집어 재밌게 읽는다면 무슨 문제랴. 시간도 없는데 시력이 금방 피로감을 느끼니 이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활자 중독증에..

네줄 冊 2018.02.17

세상의 모든 옷걸이는 누군가의 배후다 - 정충화

세상의 모든 옷걸이는 누군가의 배후다 - 정충화 모든 옷걸이는 옷을 위한 몸이다 주인을 대신하는 또 다른 몸 육신의 껍데기를 끌어안고 기꺼이 제 몸을 빌려주는 누군가의 대역(代役)이다 철 지난 양복을 걸치고 옷장 속 어둠을 거르거나 젖은 셔츠를 입고 빨랫줄에 매달려 햇볕과 바람의 통로를 지키는 수문장이 되기도 하는 것들 세상의 모든 옷걸이는 누군가의 배후다 나 역시 낡고 찌그러져 가는 한낱 옷걸이일 뿐이다 *시집, 누군가의 배후, 문학의전당 삶과의 불화 - 정충화 홀로 밥 먹을 때가 잦다 마주하는 눈길 없이 마른 밥을 삼킬 때마다 삶의 황폐함을 생각한다 건기의 사막처럼 수분이 바싹 말라버린 박토 내 영지의 척박함은 늘 나를 질리게 한다 한번 끊어져버린 끈은 매듭만으로는 결속력이 약해서 언제고 다시 끊어지..

한줄 詩 2018.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