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주저흔 - 박성준

마루안 2018. 2. 25. 18:30



주저흔 - 박성준



숲이 나를 불렀으니 이제 좁은 몸속
옷장에 걸려 있는 바람들
흐물거리는 빗장뼈를 밤의 내부로 가라앉히네
두꺼운 승모근이 옷걸이마다 붙잡고 있던 바람
꼬리 아홉 개 달린 별똥별
여우야 가지마 가지마 나는 밤을 만지려고
그림자에 스며들어 누웠네
뻐꾸기시계를 끌어안고 잠든 사내가
옷장으로 들어가 바람이 되었다는 소문과
그 소문에 오독당한 귀들이 떠오르네
나사가 삐걱거리는 내 복부를 열어젖히고
보았을까 그런 밤의 축축한 잔해들
혈거하는 울음들이 무릎 꿇은 바람을 일으켜
여우 굴에 벽화를 그리네, 밤과 내통한 빛이 그리워
내 갈비뼈, 어두운 물속에서 가만히 떠올랐던가
울음이 악보를 찾아가듯 숲이 밤을 찾아가
어두운 옷장 속 빈 것들이 냐를 기다리네
깜빡깜빡 허공을 긋고 가는 저 불빛들



*시집, 몰아 쓴 일기, 문학과지성








기대심 - 박성준



스카치 테이프를 뜯는다


가까운 속눈썹을 여기, 떨림이라고 두고
나는 한쪽으로만 집착할 각오로 발목을 자른다


이유가 어찌 성립되었든
마스카라 뷰러로 칼을 갈았거나 눈을 감아 얼굴에 능선을 만드는 일
눈에 혈통을 묻는 일, 다시 말해
잘린 발목으로 당신 속눈썹을 반만 붙잡는 일
감금한 내 몸 일부를 팽팽하게 당겨 소거하고, 당신의 시선 쪽으로 발자국을 놓는다


황색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각질들이 흰색을 띄는 것처럼
본래에서 색을 절충한, 투명은 붙잡을 것이 있어, 투명은 투명


투명한 피를 흘리는 나는 얇거나 지나치다
돌아보는 길을 돌려다가 대답을 만들고
끈적한 너는 바라봄으로써 날을 세운다
칼을 물고
발에게 피를 묻고, 나는 대답이 없다


준비된 곁으로 나는 한 번은 부딪힐 이유이다


그만, 그만, 너를 붙인다
의도하지 않아도 지문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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