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 묘지 - 윤희상
죽음은 그렇게
땅으로 스며드는 것
저 하늘로 스며드는 것
불어가는 바람 속으로 스며드는 것
산길을 오르다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무덤을 보았다
봉분이 낮아지고 있었다
새소리가 들리고
이제 무덤은 보이지 않으리라
어떤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와서 부르는 사람도 없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리라
곧 평평해지리라
*시집,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문학동네
상여 - 윤희상
볕이 들지 않는 그곳의 어둠은 상여의 식량이다
바람이 잦아 산꽃만 피는
산비탈의 외딴 상엿집에 상여가 산다
몸의 마디와 마디를 흩뜨려놓은 채 잠만 잔다
상여가 기다리는 것은
온몸에 종이꽃을 달고 외출하는 날,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을 때 한 번만 불러낸다
초상집 지붕 위로 저고리가 던져지고,
상여는 지게에 실려 마을로 내려온다
초상집 앞에서 뼈를 맞추듯
마디와 마디가 이어지면 상여는 한 마리 새가 된다
상여는 가장 깊은 곳에 관을 품고 일어나서
애잔한 상엿소리를 들으며
상여꾼의 어깨와 어깨에서 만들어지는 리듬을 타고 날아간다
개천을 건너, 흔적도 없이 산속으로 스며든다
# 적어도 1970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시다. 이 시를 읽고 어릴 적의 풍경이 스쳐간다. 동네 모퉁이 산속에 상엿집이 있었다. 잘 안 지나다니는 곳이지만 동무들 몇과 있을 때는 용기가 났다. 두 손을 눈 양쪽에 대고 들여다 보면 어두컴컴한 공간에 놓여 있는 상여가 무서웠다. 왜 그렇게 어렸을 때는 무서운 것이 많았을까. 지금 무서운 것이라곤 오직 나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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